더불어민주당의 ‘혐오와 증오의 정치’가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새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채택, 특검과 국정조사 남발 등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돌을 던져대는 모습이다. 나름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처럼 ‘극단 정치’로 치달을수록 열성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지지자 중에서 이탈이 늘어나고 당은 점점 고립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다. 최대 의석 정당의 폭주를 목격한 중도층 사이에 “다음 선거 때 보자”는 응징 심리가 감돌 수도 있다.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손해라는 대차대조표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정치학계의 한 논문(‘정당 간 양극화가 투표율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가?’ 가상준 2020년)은 기존의 공식을 허물고 있다. 이 논문은 한때 크게 하락했던 국내 선거의 투표율이 2010년을 기점으로 계속 오르고 있는 배경에 주목한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의 경우 2007년 투표율이 6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2012년 75.8%, 2017년 77.2%로 매번 올랐다(2022년 대선은 77.08%). 국회의원 선거 역시 2008년 46.1%, 2012년 54.2%, 2016년 58%, 2020년 66.2%로 상승일로다.
한국 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으로 TV에서 정치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는 말이 나온 게 벌써 오래전부터의 일인데 투표율은 오히려 올라가고 있으니 납득하기 어렵다. 이 연구는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감도 변화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쉽게 말하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각자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 대한 호감도를 높여가고 있는 반면에 상대 정당에 대한 혐오감 역시 커지고 있으며 그 차이, 즉 ‘감정 온도’의 격차가 점점 증폭되면서 투표율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는 2007년 대선 때 3.722에서 2012년 대선은 3.804, 2017년 4.308로 갈수록 높아졌고(비호감도는 최고 호감도 수치를 10, 최저 호감도를 0으로 잡고 양당 후보자에 대해 호감도를 질문한 뒤 그 차이의 평균값으로 산출), 전체 투표율도 동반 상승했다.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도 학술적으로 확인됐다. 또한 후보자에 대한 ‘애착’과 ‘혐오감’ 가운데 ‘혐오감’ 쪽이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더욱 견인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대선 때 “저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해 투표장에 간다”는 이른바 ‘부정적 투표’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혐오는 나의 힘’인가. 투표 참여가 이런 동력(動力)에 의해 이뤄진다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여건에선 정당들이 스스로 일을 잘해서 득점하는 것보다는, 상대 정당에 대한 혐오감과 적대감을 부채질하는 게 손쉽다. 민주당의 ‘막 나가는 정치’가 상대 정당을 헐뜯고 발목 잡는데 집중하는 걸 보면 이런 선거 양상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현재의 상황은 일단 정치인들 사이의 ‘정치적 양극화’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빠지는 단계가 ‘정서적 양극화’다. 정서적 양극화는 일반 유권자들도 반대편 지지자와는 아예 같이 있기도 싫다는 감정적 대립으로 넘어간다.
국내 어느 조사에선 친구를 사귀거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다른 정당 지지자를 불편하게 느낀다는 응답이 각각 31.6%, 35.4%에 달했다.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던 정서적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정서적 양극화의 끝은 갈등과 반목, 편견과 불신의 사회적 확산이다. 결코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동질성이 높은 곳이다. 인종·종교 등 여러 대립적 요소들을 품고 있는 나라들과는 크게 다르다.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선거 전략이 마땅치 않다. 지역감정에 기대는 방법이 있지만 선거에서 이 소재는 점점 먹혀들지 않는 추세다. 달리 무기가 없으니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혐오감을 부추기는 데 골몰한다. 양대 정당 체제가 고착되면서 선거 때마다 사생결단의 결투가 벌어지는 현상도 정서적 양극화의 토양을 더하고 있다.
이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최근 하원의장 해임 등 정치적 혼란상 역시 그 기저에 장기간 누적되어온 미국 사회의 정서적 양극화가 깔려 있다. 정당 사이의 극한 대립이 사회 전체의 정서적 양극화를 부르고, 정당 내부가 극단적인 세력에게 휘둘려 증상을 더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정서적 양극화에 꽤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상대 정당은 반드시 패배시켜야 할 적이 되었고, 같은 편의 거짓말에는 눈을 감으며 오히려 큰돈까지 안겨준다. 민주주의 규범과 제도는 실종되고 있다. 물줄기를 돌리기 위한 사회적 각성과 모멘텀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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