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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와 대한민국 [48] 魔王 김정일의 민낯 ①
조국을 사랑한 마이클 이의 美CIA 40년 생생한 증언
마이클 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21 06:30:20
 
▲ 마이클 이(Michael P. Yi) 박사
 
[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존재적 열등감과 환경적 우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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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격 형성의 보편적인 요소는 세 가지다. 첫째는 유전에 의한 선천적인 요소이며 둘째는 교육이고 셋째는 환경이다.
 
미국 정부에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 대해 정신분석과 리더십 스타일을 연구하는 전문부서가 있다. 그들이 설정한 기준으로 김정일의 인간성을 간단히 말하면 그는 출생과 성장 과정에서 오는 심각한 ‘존재적 열등감’과 한평생 절대 권력을 누리며 살아온 ‘환경적 우월감’이 배합된 특이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이 두 개의 거의 대등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상호 모순(contradiction)과 상호 보완(compensation)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시달리는 일종의 정신적 기형아였다.
 
김정일을 연구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에 따르면 그는 비겁하고 잔인하며 돌발적인 한편 방어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반칙과 편법을 능력으로 착각하며 허세와 과시를 즐기는 인간이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그런 부정적인 면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불안해 했으며 그런 불안한 심리 상태에서 발생하는 행동 방식은 대개 예측 불허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출생과 성장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본명 김성주)과 어머니 김정숙은 중국 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으로 활동하다가 일본의 군경 합동작전으로 부대가 괴멸돼 1940년 12월 패잔병이 되어 소련으로 탈출했다. 이후 두 사람은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의 소련 연해주 극동지구 경비사령부 소속 야영지에 수용되어 있을 때 그곳에서 1941년 2월16일 첫아들 ‘유라(김정일)’를 출산했다.
 
그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1941년 2월16일이며 소련 이름은 ‘유라 일세노미치 김’이고 조선 이름은 김정일(金正一)이었는데 후에 김정일(金正日)로 바꿨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김정일의 생년월일을 1942년 2월16일로 바꾸고 출생지도 백두산 비밀기지라 하는 등 ‘백두 혈통’을 날조했지만 그의 출생지는 엄연히 소련 땅이다.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은 1917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김정일이 8살 되던 1949년 9월에 평양에서 유라·수라·경희 삼 남매를 남겨 두고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김일성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아들 김정일을 총애했지만 그 후 계모인 김성애가 평일·영일·경진 등 이복형제를 낳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김정일의 동생 수라는 어려서 수영하다가 익사했는데 하나 남은 여동생 김경희에 대한 그의 혈육의 정은 대단했다. 모계우성(母系優性)으로 생모 김정숙의 볼품없고 왜소한 외모를 닮은 김정일 남매는 열등감에 시달리며 성장했고, 김정일은 자신의 작은 키와 비대한 모습을 스스로 의식해 자신을 ‘똥자루’라고 부르기도 했다.
 
 
 
▲ 어린 김정일을 안고 있는 김일성 주석과 그의 첫 부인 김정숙. 김정일은 어머니 김정숙을 닮아 왜소하고 볼품없는 외모로 평생 열등감을 품고 살았다.
 
모계 우성과 부계 우성
 
자녀들은 대개 모계 우성 또는 부계 우성으로 태어난다. 김정일의 경우는 모계 우성이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초상화를 절세 미인처럼 예쁘게 그려 놓고 사격 명수이며 용감한 항일 빨치산이었다고 추켜세우고 있지만 그녀는 사실 비천한 출신의 볼품없는 여자였다.
 
김일성은 빨치산 동료 최현의 주선으로 그녀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으며 외모도 왜소하고 볼품없었다. 그래서 김일성은 그녀를 절대로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았으며 심하게 구박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옛날에 북한의 부주석을 지낸 김일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열등감의 특징
 
김정일 집권 후 북한에서는 외국에서 온 외교사절이나 중요한 외국인을 접견할 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과 최용해가 의전을 맡았다. 최고 통치자인 김정일이 거의 모든 경우에 외국인과의 대면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외국인을 만나 대화를 하게 되면 김정일은 자주 천장이나 방바닥으로 시선을 돌리며 상대방을 정면으로 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종종 군부대를 방문하고 일반 생산 현장에 나타나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집무와 관련해 여러 사람과 접촉했지만 평생 한 번도 대중 앞에서 긴 연설을 한 적이 없다. 그에게는 비행기를 못 타는 고소공포증만 있는 게 아니라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일종의 무대공포증도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와 같은 그의 심리 현상은 모두 존재적 열등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김일성대학을 졸업했지만 성실하게 학업을 닦은 학생은 아니었다. 재학 시절 그는 김일성의 아들이란 후광을 업고 여학생과 고위직 간부의 자녀들을 거느리고 문예 서클 활동을 한다면서 설치고 다녔다. 하지만 그가 배운 것은 오직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과 일인 독재 체제의 수령절대주의·날조된 조선 역사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절대 권력의 모든 매력과 힘의 실효성에 대해 체득했고 계급투쟁을 위한 철저한 증오심을 두뇌와 세포 속에 입력했다. 그가 만약 일개 평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열등감 많은 겁쟁이로 물려받은 부모의 재산이나 탕진할 그런 위인밖에 못되었다. 그러나 권력과 그가 자라난 사회적 환경이 그를 ‘김정일’로 만든 것이다.
 
예술 감각을 지닌 독재자
 
김정일은 1만5000개가 넘는 세계 각국의 영화 필름을 갖고 있었다. 그가 특히 좋아한 것은 허구성이 짙은 애정 영화·공상과학 영화·폭력 영화 등이다. 제임스 본드의 007시리즈는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다 보았다고 한다.
 
대학 재학 당시 어느 정도의 예술 감각이 있는 청년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는 서방세계의 문물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서 아버지 김일성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믿었다. 영화를 미친 듯이 좋아해서 영화광이 되었고 남한의 영화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을 납치해 가기도 했다.
 
그는 남한의 TV 방송과 미국의 CNN 방송을 보았으며 남한 영화나 미국의 영화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해박하며 서방 세계의 물정도 많이 알고 있었다. 1990년대 초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그런 점을 고려하여 김일성 이후에 김정일이 권력을 잡으면 소련의 고르바초프처럼 북한의 정치·경제 체제에 일대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는 독재자의 아들로 태어나 안하무인으로 성장한 데다 사교 집단의 교주와도 같은 일인숭배의 단맛에 길들어 그 허물을 벗지 못했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권력과 영화를 누리며 살아온 것이다.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착각 속에 세상을 살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무엇인가 최고를 추구한다.
 
그는 비현실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보상 심리가 강하고 상상력이 뛰어나 허무맹랑한 공상을 즐기며 현실 세계의 표준이나 합리적인 방식이 아닌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지능범들의 범행 기법을 분석해 보면 보통 사람들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구상하고 사용한다.
 
열등감의 소유자가 우월감을 유지하려면 약세에 몰릴 때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리고 악수(惡手)를 사용하면서 묘수라고 자만한다. 또 필요하면 언제든지 반칙이나 편법을 쓰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그런 현상을 거의 본능에 가까운 ‘약자의 생존수단(survival mechanism of the weak)’이라고 한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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