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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군부를 장악하다
김정일은 1991년 12월24일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되고 1992년 4월21일에 원수 계급을 받음으로써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어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된 지 4개월 만인 1992년 4월에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장성급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북한군 장교는 크게 원수급·장성급·군관급 등 15개 계급으로 나뉜다. 원수급은 대원수·원수·차수, 장성급은 대장·상장·중장·소장, 군관급은 좌급군관에 대좌·상좌·중좌·소좌, 위급군관에 대위·상위·중위·소위가 있다. 당시 김정일은 차수 오진우를 원수로, 최광을 포함한 8명은 대장에서 차수로, 상장에서 대장으로 16명, 중장에서 상장으로 96명, 대좌에서 소장으로 524명이나 진급시켰다.
또한 만경대 구역에 거대한 장성급 전용의 병원을 건설했고 국경일에는 장성들을 대동강 구역 능라초대소에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으며 군단장급 이상 간부들에게는 김일성의 이름이 새겨진 은색 백두산 권총과 고급 혁대 등을 하사했다.
한때 적이었던 빨치산 1세대 오진우는 아버지를 의식해 그가 1995년 2월25일 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상징적으로 인민무력부장의 직위에 두고 그 외의 군부 실세는 모두 자신의 심복으로 채웠다. 그리고 김일성이 사망하자 자신과 군 지도부와의 관계를 옹벽으로 둘러싼 운명 공동체로 만들었다.
방종한 사생활
김정일을 용납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방종과 초호화판 사생활이었다. 인민은 굶어 죽어도 그와 그의 가족은 39호실 비자금으로 돈을 물 쓰듯 썼다. 생활용품은 거의 다 외국산 수입품이며 심지어 애완동물까지도 프랑스제 샴푸를 썼다.
이런 물자를 ‘1호 물자’라고 하는데 이 물자들은 다엑심·아미산 상사·2월 은빛 달 상사 등 여러 개의 전담 상사들이 수입했다. 1호 물자 조달을 총지휘하는 사람은 김정일 직속 서기실의 박용무였는데 그는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김정일을 위한 물자 조달에 신명을 다 바치고 있었다.
김정일의 기쁨조 향연에도 1호 물자가 사용됐다. 기쁨조 향연에 초대되는 간부는 10여 명 정도로, 거의 다 김정일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김정일은 그들이 설설 기는 것을 좋아했다. 주민은 굶고 병들어 죽어 갔으며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약 27만 명의 억울한 사람들이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성혜림의 출현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정일은 그가 영화 부문 업무를 전담하게 되는 1967년부터 거의 매일같이 조선예술영화 촬영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성혜림(成蕙琳)이라는 미모의 여배우를 만나게 된다. 김정일보다 4년 연상인 성혜림은 당시 11살 된 딸(이옥돌)을 둔 30세의 유부녀였다.
성혜림은 1937년 1월24일에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성유경의 딸로 태어났다. 어떤 기록에는 성혜림이 경남 창녕에서 출생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다. 성혜림의 오빠 성일기의 증언에 의하면 그 자신과 여동생 성혜랑·성혜림은 서울 종로구 계동, 즉 지금의 현대그룹 뒤편의 여운형이 살던 집 옆집에서 출생했다는 것이다.
성혜림의 아버지 성유경(1906-1982)은 고향인 경남 창녕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갑부의 자식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보성고보를 졸업하고(16회) 좌익 활동에 가담했다. 1945년 12월에 남로당에 가입했고 1946년 정판사 위조지폐사건 때는 남로당 중앙위원회 재정부장을 역임했다.
성혜림의 어머니 김원주(1907-1994)는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이다. 그녀는 1920년대 민족주의 잡지 ‘개벽’의 여기자로 활약했으며 역시 좌익 활동에 가담해 남조선 민주여성동맹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같은 해 9월에 두 딸 성혜랑과 성혜림을 데리고 월북해서 미리 가 있던 성유경과 합류했다.
성혜림의 오빠 성일기(1933)는 남쪽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1953년 12월31일에 체포되었는데 자신이 소속돼 있던 빨치산 부대장 남도부의 은신처를 폭로한 공로로 석방되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 북한에서는 남로당 출신들이 대거 숙청되는데 지도부 인사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지만 성유경 부부는 중형을 면했다. 하지만 그들은 김정일의 실질적인 장인·장모였음에도 남한의 지주 출신이며 아들 성일기가 남쪽에서 체포되었을 당시 했던 배신행위 때문에 모든 요직에서 축출되고 노동자 수준의 여생을 살았다.
한편 월북 후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한 성혜림은 학교를 갓 졸업한 18세의 나이로 이기영(李箕永)의 큰아들 이평(李平)과 결혼한다. 이기영은 1930년대 서울에서 활약하던 프롤레타리아 경향문학(傾向文學), 소위 KAPF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김정일은 이평의 동생 이종혁과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형수인 성혜림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숨겨진 아내, 숨겨진 아들
성혜림에게 반한 김정일은 이평과 성혜림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1969년부터 그녀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성혜림과의 불륜 관계가 권력 후계자로서의 위상에 해가 될까 염려해서 아버지 김일성에게는 모든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러다가 1971년 5월10일에 그들 사이에서 첫아들 김정남이 출생했다. 김정남은 숨겨 놓은 자식이었기 때문에 김정일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세상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못했다. 김정남은 어려서 주로 외할머니 김원주와 이모 성혜랑의 품에서 자랐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사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성혜림에게는 정서불안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 말, 김정일이 후계자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김영숙(金英淑)과 정식 결혼을 하자 증세가 악화되어 치료를 받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게 된다.
1974년 12월에 김영숙에게서 딸 김설송(金雪松)이 태어났다. 김일성은 그때까지도 장손인 김정남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김일성과 가족들이 김정일의 공식적인 첫 아이 설송에 대한 애정으로 법석을 떠는 와중에 김정일마저 차츰 내연녀 성혜림과 김정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식어 갔다. 결국 성혜림은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시름시름 앓다가 절대 권력자의 가족으로 빛을 보지 못한 채 2002년 5월18일 숨을 거두고 모스크바의 한적한 묘지에 매장되었다.
성혜림의 가족들
성혜림이 김정일을 만나 동거를 시작할 무렵 그녀에겐 전 남편 이평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옥돌이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다. 이옥돌은 어머니 성혜림과 생이별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이후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그녀는 성인이 된 후 네팔과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왕송림과 결혼했다.
왕송림이 스웨덴에서 근무할 때 성혜량의 아들 이한영이 스위스에서 실종되었는데(대한민국으로 망명) 당시 그가 이한영을 찾기 위해 UN 주재 북한 대사 진충국과 함께 맹활약을 했다. 이옥돌은 스웨덴에서는 이옥순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성혜림이 모스크바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그녀 옆에는 언니 성혜랑과 그의 딸 이남옥이 같이 있었다.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1960-1997·본명 이일남)은 1982년에 대한민국으로 망명했고 성혜랑은 1996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한영은 망명 후 1997년 2월15일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현대아파트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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