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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이의 난세치세(亂世治世)] 국군의 탄생과 반란 그리고 숙군
박정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04 06:30:04
 
▲ 박정이 (예)육군대장·밀리테크협회 회장·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광복 직후 남한 사회는 그 양상과 혁명적 정황 등 그야말로 전 부문이 정치화되어 있었다. 난립한 정당·사회단체·군사 단체가 1945년 11월 당시 205개에 달했고, 그 가운데 군사 경력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자생적인 군사 단체의 수도 30여 개나 되었다.
 
군 창설과 연관하여 창설 계획이 다각도로 모색되었다. 창군 과정에서 경비대 간부요원의 충원은 주로 일본군·만주군 출신의 우익 군사 경력자들로 이루어진 반면, 군사영어학교와 경비사관학교의 경우에는 상당수의 좌익 계열도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미 군정청은 ‘불편부당’ 정책을 취하면서 신원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연대별로 진행된 모병 과정에서 좌익계 사설 군사 단체에서 활동하던 자들이 대거 입대한 것이다.
 
당시 남로당의 국방경비대 침투 공작은 장교와 사병을 구분하여 방법을 달리했다. 장교는 주로 조선경비사관학교 내에 이미 침투했거나 포섭된 조직망을 통하여 남로당 추천자를 입교시키는 방법과 임관된 장교를 통해 지인들을 포섭하는 방법 등으로 이루어졌고, 사병은 대부분 빈농 출신으로 광복 후 좌익단체에 가담했던 자가 많았다.
 
1947년 10월 미 국무성이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전제 아래 남한의 군비를 증강시키는 방안을 검토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은 1948년 2월6일 보고서에서 정규 군대의 창설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난관이 너무 많으므로 유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경비대 병력을 2만 명 수준에서 5만 명으로 증원하되 보병부대의 중화기는 주한미군으로부터 공급하고 그 외 소요장비는 미 극동군 보급창에서 충당하게 할 것을 건의했다.
 
조선경비대는 1947년 12월1일 통위부 일반명령 제69호에 의거해 이미 편성된 9개 연대를 기간으로 3개 여단이 창설되었고, 미 합동참모본부(합참)가 1948년 3월10일 경비대 2만5000명을 5만 명으로 증강시키는 계획을 승인하자 4월29일부로  2개 여단을 창설하고 5월1일∼4일 6개 연대를 추가로 창설해 5개 여단·15개 연대로 증편한 후 후방지원 부대를 보강했다. 1948년 8월15일 정부가 수립되자 조선경비대의 5개 여단·15개 연대는 9월1일부로 대한민국 국군으로 잠정 편입되었으며 당시 총 병력은 5만490명에 달했다.
 
국군 창설 당시 군부 내부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군내에 침투한 좌익 세력에 의한 소요 및 반란 사건이었다. 한국 문제가 유엔에 상정되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확실해지자 무장봉기의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한 북로당은 남로당에게 ‘5.10 선거’ 저지를 위한 제주도 4.3 사건을 비롯해 여순사건과 대구사건을 일으킬 것을 지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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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책 김달삼은 제9연대 조직책 문상길 중위와 협의하여 5.10 선거를 저지할 목적으로 1948년 4월3일 제주도 전역에서 폭동을 일으켜 잔악한 행위를 자행했으며, 제주도 폭동 진압 차 제14연대가 출동하자 연대 인사계 지창수 상사와 김지회 중위 주도로 반란을 일으켜 여수·순천·구례 등지에 적색 행정을 실시하고 우익계 인사를 인민재판에 회부해 총살시켰다. 
 
대구에 주둔한 제6연대에서도 여순사건에 호응하여 봉기하려다 발각되어 좌익 분자가 연행되는 사태가 일어나자 노동당 중앙당부에서 연대 정보과 선임하사 이정택 일등상사에게 봉기를 지령함으로써 1948년 11월2일·12월6일·1949년 1월30일에 연속적으로 3차에 걸친 반란 사건이 발생했다.
 
1948년 6월18일 제주도 주둔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의 암살 사건은 숙군의 단초가 되었는데, 새로 취임한 이범석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은 장병들의 사상 통일을 위한 반공정신 강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천명하면서 대대적인 숙군을 강조했다.
 
정부 전복 활동과 군부의 반란 등 좌익 활동이 극렬해지자 정부는 1948년 12월1일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1948년 12월21일 예하에 15개 파견대를 설치해 본격적으로 숙군 작업에 착수했다. 이 작업은 1948년 10월부터 1949년 10월까지 7차에 걸쳐 단행되었다. 정부에서는 1949년 10월19일 남로당 등 좌익계의 133개 정당 및 단체의 등록을 취소하고 공산당을 불법화시켰다.
 
대대적인 숙군 작업은 1949년 7월에 일단 막을 내렸는데 그 결과 당시 4749명의 장병이 처벌을 받았다. 이는 당시 군 병력의 약 5%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였다. 숙군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었고 부작용도 많았지만 대대적인 숙군 작업의 결과 군내의 좌익 세력이 일망타진되었고 그 결과 6·25전쟁 시 국군의 성공적인 전투 수행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숙군의 의의는 대단히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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