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란 프랑스혁명을 전후해 태어나 발전한 개념이다. 이 단어들은 개인의 이념과 가치관을 편리하게 구분해 드러내 준다. 한국에서도 해방과 건국 후 지금까지 이들 세력 간의 갈등이 이어졌고, 이러한 본국 내 대립에 재일교포 대표 조직인 민단(民團·재일본대한민국민단)도 흔들렸다.
교포 1세들은 대한민국 경제개발과 올림픽·금융위기 극복 등등에 크게 도움을 주며 충성의 역사를 써 왔지만, 교포 사회 전반적으로 조국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옅어졌다. 그 배경에 우선 고령화가 있고 조직이나 애국심에 무뎌진 2·3세들의 현실이 존재한다. 또 더 이상 재일교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한 대한민국이 있다. 꿋꿋하고 당당하던 1세대 분들의 존재감을 이젠 가끔 부고(訃告)로나 떠올리는 시대다.
보수와 진보의 역사는 산업혁명·자본주의 발전과 관계 있지만 재일교포 사회에선 훨씬 복잡하고 치열한 형태로 지속됐다. 민단은 일본 사회 속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면서 조총련(재일조선인총련합회)과의 이념 전쟁도 치뤄야 했다. 크고 작은 재일교포 모임이 민단으로 통합되어 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정식 추인을 받으며 출발했다.
민단은 그러나 북한 조선노동당의 물심양면 지원 아래 세를 키워 간 조총련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피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일본 땅에서 겪는 분단의 아픔이었다.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의 국위 상승과 함께 민단의 우위가 증명되는가 싶었으나 한국 국내 정치의 파장이 여전히 이곳 교포사회에까지 미치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로 지난달 제45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 행사에 민단 현역 간부들이 전원 불참한 것을 들 수 있다.
민단은 전 세계 700만 한인 교포 가운데 가장 긴 역사와 큰 규모를 가진 재외국민단체, 창립 때부터 본국 정부가 준정부기관으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일본 정부 및 사회에서도 한국정부 공인단체로 받아들이고 있는 유일한 교민 조직이다. 다만 민단의 역사를 보수·진보의 틀로 설명하려 들면 곤란하다. ‘친일=보수’ ‘반일=진보’ 식의 한국 내 정치 프레임으로 민단을 재단하는 것 또한 크나큰 오류다.
한국 국내 정치로 민단이 고통을 겪은 대표적 사례가 1960년 4·19와 1961년 5.16 때였다. 1972년 ‘유신체제’에 지지를 표명한 민단 중앙본부는 그후 집행부를 중앙집권적 조직으로 개편했으며 ‘10월 유신’에 호응해 ‘유신민단’을 자처할 정도였다. 결국 균열이 생겼고 민단의 본국 정부 추종에 반발한 사람들과 한국청년동맹·한국학생동맹 등 산하단체가 민단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았다.
또 한 번 민단의 대파란은 문재인 정권 시절 벌어졌다. 민단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며 주요 관련 직책을 정권 입맛에 맛는 인사들로 갈아치우려 한 큰 사건으로 기억된다. 제19기 민주평통 일본부의장에 민단 중앙본부 단장이 아닌 김광일 재일한국상공회의소 명예 회장이 임명됐다. 오랜 관례를 깬 이례적 사태였다. 이런 류의 갈등이 문 정권 집권 내내 이어졌다.
2018년 5월 문 대통령은 첫 일본 방문 시 한국 외교부와 주일대사관의 계획안을 거부했고, 대통령과 청와대 측에선 ‘반공 민단’이라며 민단 주도의 교민 격려 일정을 의도적으로 잡지 않았다. 이에 신용상 고문이 “본국의 대통령이란 교포들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데 문 대통령이 재일교포를 버렸나 싶어 너무나 슬프고 섭섭하다”며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민단에서 정기적으로 대통령을 만나 대일(對日) 문제 관련해 정책 건의를 하는 전통 또한 문 정부 5년간 무시됐다. 민단 인사들의 청와대 방문이 거절된 것이다. 연간 보조금 80억 원도 대폭 축소하려 했다. 게다가 3·1절 행사를 조총련과 같이 할 것, 심지어 조총련과 화해 및 통합(統合)할 것을 종용했다.
당시 일련의 문 정부 요구는 민단 전반에 어이없고 충격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격분한 민단 전직 간부들이 2019년 한재은 대표를 중심으로 대통령 상패 수상를 거부했으며 이후 문 정부의 굴종적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자유민주주의를지키는재일본협의회(한자협)’를 출범시켜 민단의 정통성을 재확인하고자 했다.
한국 정부는 1977년부터 민단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처음으로 약 10억 엔의 정부보조비를 지원했다. 현재 민단 연간 예산 80억 엔의 약 10%가 매년 지원된다. 하지만 민단이 본국에 바쳐 온 애정과 헌신의 역사를 잊고 지원금을 앞세워 국내 정치의 해바라기 단체로 만들어선 안 된다.
민단은 반일·혐한 다 반대한다. 조총련이 살아 있는 한 앞으로도 공산주의와 싸워 이기는 길을 택할 것이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이런 민단을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 본국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자유민주주의 신념만 확고한 정부라면 민단은 협조할 것이다. 이것이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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