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주]

DJ의 노벨상 로비 의혹 덮어 주려 한 노무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승리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은 두 명의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소위 미군 장갑차 사건이었다. 사고 후 서울 시민들은 몇 주 동안 야간에 미군 규탄 시위를 벌이며 사고 책임자인 두 명의 미군 병사를 한국 법정에 세울 것을 요구했다.
이회창 후보는 선거 직전 미군 장갑차 사건 규탄 집회에 직접 참석하는 등 노력했지만 여중생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이미 강하게 형성된 반미 정서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취임식 전 정권 인수 기간 중 대북 송금 및 노벨상 관련 의혹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 그의 핵심 측근은 이 문제가 이전 정권에서의 문제라고 일축했지만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다.
로비 의혹 불거지자 박지원이 물타기 꼼수
2003년 1월29일 오마이뉴스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남북정상회담 전 북한에 2억 달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정보를 흘린 고위관계자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일 것으로 추정된다. 어차피 드러날 문제라면 차라리 금액을 크게 줄여 정권이 바뀌는 시기에 물타기 식으로 넘어가는 게 낫겠다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보도가 나온 다음 날 전직 국정원 요원 김기삼은 ‘회칠한 가면 악마의 초상’이라는 제목에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대북 뒷거래 실상’이라는 부제를 달아 장문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전직 국정원 요원 김기삼의 폭로
“지난 김대중(DJ) 정권 5년간 국가 통치권자에 의한 반역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적을 이롭게 하고 우리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믿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눈이 어두워 조국에 반역 행위를 했다고 믿습니다.
DJ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에게 비밀리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을 갖다 바쳤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15억 달러 합의
남북한이 정상회담의 대가로 15억 달러라는 금액에 합의했으며, 저는 이것이 민족에 대한 배신이고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DJ를 ‘악마적인 사기꾼’이라고 판단합니다.”
김기삼은 자신의 글에서 당시 DJ‧김정일‧현대그룹 사이에 있었던 3각 협력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99년, 외환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한 DJ는 자신의 업적과 경륜을 해외에 적극 홍보하면서 노벨상 수상 분위기 조성에 진력했습니다. 그해 7월, DJ는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벨상 사냥에 나섰습니다. 역대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 수상자 11명 가운데 6명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DJ는 이제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만 마련할 수 있다면 노벨상을 목에 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DJ와 김정일 간의 은밀한 뇌물 뒷거래는 이러한 배경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1999년 말, 온 세상이 새천년의 기대에 한창 들떠 있을 즈음 DJ와 김정일은 극비리에 뇌물 뒷거래 협상을 마무리했습니다. DJ가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뒷돈의 규모는 미화(美貨)로 15억 달러입니다. 인류가 뇌물이라는 개념을 발견한 이후 최고의 뇌물 액수이자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일 것입니다.
실제 뇌물은 현대그룹에서 제공
현대그룹에서 이 뒷돈의 대부분을 제공했습니다. 지난번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한 현대상선의 4000억 원은 이 돈의 일부일 것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현대상선의 대출금 일부가 남북정상회담 선금으로 건너갔고, 잔금은 대부분 2000년 9∼12월에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0년 3월과 6월에 벌어졌던 현대그룹 왕자의 난은 정주영 회장이 이 돈을 대기 위해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시도였을 것입니다.
DJ가 남북정상회담에 걸었던 세 가지 목표
DJ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의도는 자명합니다. 단기적으로는 4.13 총선에서 민주당을 제1당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고, 중기적으로는 노벨평화상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대북 관계 개선을 지렛대 삼아 호남당이라는 새천년민주당의 한계를 벗고 궁극적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정계 개편을 획책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단기와 장기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노벨평화상을 받는 데 남북정상회담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DJ는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공적 자금을 현대에 지원하면서 현대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의 상당 부분을 북한에 뇌물로 바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현대는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일부를 북한에 전달하고, 그 대가로 금강산과 개성공단 독점사업권을 받았습니다. 북한은 현금을 챙기고 위장된 평화 생색을 내줌으로써 DJ가 노벨평화상을 받도록 도운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내용의 폭로와 함께 전면적인 조사를 요구하며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도, 일부의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DJ가 자랑스러워한 노벨상은 북한 동포의 피눈물과 절규, 우리 국민의 혈세가 한데 뭉친 결정체입니다. 지금 DJ는 전설처럼 남아 있는 권력을 동원해 과거의 추악한 범죄 흔적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노벨상 공작과 대북송금 문제 역시 세상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지는 못합니다.”
언론의 관심은 김기삼의 폭로에 모아졌다. 동아일보는 2003년 2월5일자에 김기삼이 노벨상 공작의 핵심인물 ‘청와대 김모 씨’로 지칭한 DJ의 측근 김한정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김한정은 자신이 DJ의 노벨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자랑하고 다니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르웨이 친구들로부터 일부 도움은 받았다”고 말했다.
노벨상 공작의 일등공신은 남궁진
사실 김한정 혼자 DJ를 노벨상 수상 후보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DJ의 오랜 측근이자 정치적 동지인 남궁진 전 문화부 장관의 역할은 그 이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무려 14년 동안 해마다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추천서를 받고 자료를 모으는 등 온갖 노력을 했다. 남궁진 역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DJ의 노벨상 공작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그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과 노벨상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남궁 전 장관은 노벨상 수상은 국가적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노벨상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로비를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DJ는 남북한의 평화 체제 구축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은 것이다”며 노벨상 공작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노벨상과 정상회담을 관련지어 생각해서는 안 되며, 노벨상은 노벨상이고 정상회담은 정상회담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양자 간의 관계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국익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 어떻게 또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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