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건축물이 만들어지려면 먼저 건축주의 의지가 있어야 하며, 건축가의 작업(계획 설계)을 거치고 공무원의 법규 검토(기본설계)가 진행되고 이어서 시공(실시설계)이 이뤄진다. 이 과정은 만족할 만한 건축물, 정당한 건축물 그리고 안전한 건축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여기서 첫 번째 과정, 건축주의 의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축주의 의도는 곧 그 건축물의 기능을 말한다. 건축물이 바람직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것처럼 건축 공간이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좋은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품질이란 곧 건축물에 대한 만족도를 말한다. 만족도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기준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건축주의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건축주의 건축에 대한 지식 수준·원하는 방향·예산 수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
두 번째는 건축가이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실행하는 작업을 한다. 건축주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 이를 도면으로 그려 낸다. 이 과정에서 여러 요인을 점검해 건축주의 의도를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구분하게 된다.
또한 대지의 조건도 결정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래서 건축가는 설계 시작 전 주소를 제일 먼저 필요로 한다. 각 대지에 대해 설계 전 준수해야 할 고유 법규가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건폐율과 용적률 그리고 용도 등이 설계 시 준수해야 할 기본 사항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이 파악되면 건축가는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어떻게 설계에 담을 것인지 정리하는데, 우리는 이를 풀어낸다고 한다. 이는 마치 스포츠와도 같다. 스포츠는 규칙이 있어 재미있는 것이다. 축구는 손을 사용하면 안 되고 농구는 발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듯이 법규와 건축주의 상황이 규칙이고 이 상황에서 건축가는 경기를 잘 풀어 가는 작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컨셉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건축가는 스포츠 감독이다. 그리고 건축물에는 공간이 구성되고 형태가 나온다. 그래서 각 건축가는 자신만의 공식으로 이를 해결해 나간다.
동선, 내부로 유입되는 빛 그리고 환기 등은 이 작업에서 기본이다. 사실 건축가는 창조주와 같다. 그래서 아키텍트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창조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건축가의 설계과정에서 가장 단순하게 나오는 것이 바로 건축주와의 대화를 통한 계획 설계다. 도면의 내용은 가장 단순하지만 이 과정이 사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렵다. 즉 첫 단추이다.
건축주가 오케이 할 때까지 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 이어진다. 끝없이 변경되고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기에 복잡하게 그리면 오히려 수정 내용이 많아지므로 도면 그 자체는 단순하게 보이도록 그려 놓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내용이 결정된다. 그래서 이 과정은 계속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계획도면이라 부른다. 이 도면의 대상은 건축주다.
설계 과정에서 건축주가 오케이 하면 이제 계획도면 다음 단계인 기본도면 작업이 시작된다. 이는 대상이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원하는 주 내용은 법규 준수다. 법규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에 상응해 준비하는 도면을 기본도면이라 부른다. 계획 단계는 대상이 건축주 한 파트이다. 그러나 기본도면은 최소한 5개 파트의 대상을 갖는다. 이들이 자신의 파트에서 도면 검토를 해야 하기에 계획도면보다 5배 이상의 내용이 등장한다.
도면은 건축가 자신을 위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도면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는 것이다. 계획도면에서 도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건축주다. 건축주는 건축 전문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안 된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 알기 쉽게 들어가면 된다. 기본설계는 대상이 공무원이다.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설계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기본설계 단계에서 법규상 이상이 없으면 승인이 떨어져 이제 3번째 단계, 즉 시공을 위한 실시설계에 들어가게 된다. 계획단계는 대상이 하나, 기본설계는 대상이 5개 분야이지만 실시설계는 건축물의 성격에 따라서 그 대상이 다양하다. 실시설계의 대상은 시공회사이다. 여기에는 많은 분야가 있기에 도면은 최고로 복잡한 형태를 취한다.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내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하나의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건축물 외형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건축물은 각각 고유의 탄생 과정을 갖고 있다. 이를 알고 건축물을 보면 제대로 보인다. 이 과정이 바로 건축이다. 그래서 루이스 칸은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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