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즘’ ‘글로벌리스트’는 의미가 크게 변질된 개념들에 속한다. 인공위성으로부터 바라본 지구가 ‘둥근 공’(globe) 모양이란 사실에 근거해 생겨난 이들 ‘글로벌~’ 어휘엔 ‘경계 없는 한 덩어리’, 지구를 거대한 정치·사회·경제의 단일 공간으로 상정한 초국가적 세계관이 녹아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말 금융위기를 계기로 글로벌시장 내에서의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에 돌입해야 했다. 지방자치단체들마저 외자 유치에 뛰어들었다. 그때만 해도 글로벌리즘·글로벌리스트란 시야를 지구촌으로 넓힌 입장과 사람을 뜻했으나,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차츰 국경을 넘나드는 초엘리트 지식인·자본가와 그들의 논리를 가리키게 됐다. 제조업의 중국 이전(移轉)과 그것이 가져다준 수혜에 공화당·민주당과 중국공산당은 한마음이었다. 다만 이들 공화당 네오콘과 민주당 리버럴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미 중산층의 몰락이 가속화됐다.
20세기 전반까지의 수백 년을 아우르는 서구 근대사 자체가 글로벌리즘의 확산 과정인 셈이지만 글로벌리즘이란 용어 자체는 20세기 말 냉전 해체와 함께 등장했다. 처음엔 세계동포주의로 이해될 만큼 호감 어린 단어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첫 임기 때인 2019년 제74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글로벌리즘과 애국주의(자국중심주의)가 극명히 대립 중”이라며“세계 지배 탐욕의 화신인 글로벌리스트들과 부패·무능한 공산·사회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국가들의 주권과 국제 질서를 위협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트럼프는 반듯한 독립 주권국들이 내셔널리즘과 애국으로 자기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어 상호 협력해야 인류 번영·평화·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며 “난 미국에 애국할 테니 여러분도 자기 나라에 그리 하시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 역시 천박한 장사치의 정신나간 발언 중 하나로 취급받았으며 국내외 주류 언론에선 일제히 ‘자국 이기주의’ ‘국수주의’ ‘파시즘’으로 폄훼됐다.
국가 주권을 향한 도전인 밀입국을 조장하고, 정착한 나라에 동화되기보다 권리·다양성의 주체로 자리 잡게 한 것도 글로벌리즘과 글로벌리스트다. 미 민주당 우세 지역에 밀입국자가 많고 치안 악화와 노숙자 대량 발생이 일반적인 것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다. ‘이주와 체류’를 인권으로 본 글로벌리스트, 모든 국가를 하나의 통일된 정부 내지 기구 아래 둬야 한다는 글로벌리즘 논리가 한계에 이르렀다. 트럼프의 귀환, 유럽연합(EU) 주요국이 이른바 ‘극우’의 약진에 도전 받는 게 다 그 때문이다. 친환경과 소수자 보호를 강요하며 전체주의적 속성을 보인 권력에 질린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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