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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연극으로 왕을 홀린 마담 퐁파두르와 벨뷔 성
불로뉴 숲 남쪽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성
퐁파두르 부인이 연극·오페라를 정기적으로 공연한 곳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25 06:30:27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1745년 2월25일 궁정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잔 앙투아네트를 다시 본 루이 15세는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같은 해 4월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온 그녀에게 왕은 베르사유 궁전 옆에 아파트를 구해 주었고 퐁파두르 후작 칭호도 부여했다. 그러나 왕실과 귀족들은 고귀한 피를 물려받지 못한 그녀에게 비난과 경멸을 퍼부었다. 그들은 그녀를 풍자한 ‘푸아소나드’란 노래를 퍼뜨렸다. 퐁파두르 부인의 본래 성인 ‘푸아송’에서 창안한 이 제목은 ‘영혼이 없고, 인격이 없는 사악한 용병’을 의미했다.
 
그러나 퐁파두르 부인은 태연히 베르사유에서 극장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열중했다. 베르사유 궁전의 일부 방에 극장을 개설하고 같은 해 말부터 몇몇 궁녀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종류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그녀가 이 일에 몰두한 배경에는 그 당시 프랑스의 부유층에 만연했던 연극과 연기, 그리고 무대 위에서 받는 박수갈채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이런 열망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열풍을 이끈 사람은 볼테르와 그의 연인 샤틀레 부인이었다. 퐁파두르 부인 역시 루이 15세의 정부가 된 후에 연극에 대한 취향을 더욱 드높였다. 그녀는 베르사유의 작은 아파트, 즉 왕의 개인 공간에서 연극 쇼를 조직했다.
 
이 여인은 축제의 흥을 돋우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극단을 이끌어 무대를 불태움으로써 군주를 즐겁게 하려는 의욕이 충만하였다. 루이 15세는 끊임없는 쾌락과 부드러운 즐거움을 갈망하는 우울증 환자였다. 그의 저녁 시간을 위해 퐁파두르 부인은 베르사유에 ‘작은 캐비닛 극장’을 설립하였다. 이는 원래 루이 15세의 작은 아파트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극단의 배우들은 모두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고귀한 여인의 은총을 받고 싶어 안달을 냈다. 감독이라는 명예직은 루이 14세 왕의 서자인 라 발리에르 공작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작은 캐비닛 극장’이 퐁파두르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 1752년 제작된 벨뷔 성 기념 동전. 프랑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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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에 합류하려면 단원들은 단장이 작성한 엄격한 규칙에 서명을 해야 했다. 그중 제7조에는 “여배우만이 극단이 공연할 작품을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어떤 남자나 어떤 여자도 퐁파두르 부인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이 극단은 바이올린·비올라·플루트를 연주하는 전문 음악가들이 합류함으로써 완성되었다.
 
계절마다 퐁파두르 부인은 그녀가 주연을 맡은 세련된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그녀는 완벽하게 연기하고 천사처럼 노래하고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루이 15세는 그녀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고 그의 눈은 감탄으로 빛났다. ‘푸아송’을 경멸하던 궁정인들은 곧 그녀의 개인 무도회에 초대받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게 되었다.
 
이 극단의 성공으로 왕은 대사관 계단에 기계를 갖춘 이동식 극장을 새로 짓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였다. 퐁파두르의 성공을 질투해 공연을 외면했던 일부 궁정인들은 퐁파두르가 국고를 탕진했다는 비난을 퍼붓는 팸플릿을 붙였다.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퐁파두르는 다섯 번째 무대를 뫼동의 벨뷔 성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진행했다. 이 공연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여전히 왕이었다. 축제는 대성공이었고 이에 베르사유의 모사꾼들은 더욱 약이 올랐다.
 
북쪽 숲의 웅장한 전망을 제공하는 벨뷔 성의 아파트는 마르스·머큐리·아폴로 살롱 위의 중앙 건물 다락방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 이곳에 거주한 사람은 샤토루 공작부인과 그녀의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샤토루 부인이 사망하자 루이 15세 왕은 이곳을 퐁파두르 부인에게 선물했다.
 
 
▲ 1752년경, 벨뷔 극장의 한 단면도. 프랑스 위키피디아
 
벨뷔 성은 파리 근교 불로뉴 숲 남쪽의 세브르 근처에 위치했다.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대에 있어 전망이 좋아 벨뷔(아름다운 뷰)라는 이름이 붙었다. 루이 15세는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이 성을 2년 만에 지었다. 당시에는 지형이 고르지 않아 매우 건조하고 척박한 땅이었지만 퐁파두르 부인이 웅장한 건물을 좋아하자 그녀를 위해 국왕이 직접 감독하여 지었다.
 
이 건축물 공사에는 최대 800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다. 그럼에도 거의 절벽에 가까운 넓은 땅 위에 기초를 놓아야 했기 때문에 건설은 그리 쉽지 않았다. 성은 마침내 1750년 11월30일 완성되어 개관되었다.
 
퐁파두르 부인은 벨뷔 성에서 코미디와 오페라를 정기적으로 공연했다. 그러나 7년의 세월이 흐른 1757년 그녀는 이 성에 그만 싫증을 느껴 이 성을 몹시 좋아하는 왕에게 팔았다. 1774년 루이 15세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루이 16세는 이 성을 고모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녀들은 주로 베르사유에 머물렀지만 궁정의 엄격한 에티켓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자 이 성에 들르곤 했다. 혁명이 한창이던 1791년 2월19일 해질 무렵 그녀들은 대부분의 가구를 남겨 둔 채 이 성을 등지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1794년 5월5일, 국민회의는 이 성을 공화국의 비용으로 유지하여 국민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농업과 예술에 유용한 시설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병영으로 사용되었다. 1797년 5월 벨뷔는 매각되었고 성은 철거되었다. 지금은 테라스와 얼음 창고가 남아 역사적인 기념물로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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