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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정원 직원의 양심 증언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27] 나라 망가뜨린 YS… DJ ‘반역 정권’ 탄생 도와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18 06:25:00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좌파 정권 탄생에 책임 있는 YS 부자
 
돌이켜 보면, 지난 ‘잃어버린 10년’간의 좌파 반역 정권이 탄생하는 데는 김영삼(YS) 대통령 부자의 원죄가 컸다. YS의 무능력과 판단 착오가 좌파들에게 집권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게다가 김현철의 국정 농단은 문민정부의 몰락을 재촉했을 뿐만 아니라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정권이 말년에 접어들면서 경제적으로는 국가부도 사태가 났고 정치적으로는 국정 파탄 사태가 났다.
 
언젠가 문민정부 초기에 김영삼 대통령은 후계자 문제를 언급하면서 “깜짝 놀랄 인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이 깜짝 놀랄 인사는 이인제 씨를 지칭한 것일 거라고 해석되었다. 이때부터 K2(경복고) 세력은 이인제 씨를 은밀히 미는 분위기가 있었다. 같은 경복고 출신이라도 김덕룡 씨나 김한동 씨는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되는 분위기였다.
 
K2 세력… 경기고 출신 이회창과 반목
 
문제는 이들이 경복고 출신에 집착하다 보니 경기고 출신인 이회창 씨를 배제하고 경원시했다는 점이다. 경복고 출신들은 자신들이 “온정을 베풀어 이회창 씨를 감사원장으로 영입하고 국무총리까지 시켜 줬다”고 믿는 것 같았다. 이회창 씨가 총리의 헌법상 권한을 강조하는 등 깐깐하게 나오자 한동안 견제하는 것 같더니 기어이 낙마시키고 말았다.
 
그 후 이들은 이회창 씨가 신한국당의 총재가 되고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고 난 후에도 그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않았다. 아마 이회창 씨의 인간됨이나 성향으로 볼 때 ‘칼자루를 거꾸로 들이댈 것’으로 판단하는 듯했다. 결국 YS가 이회창 후보와 끝내 갈라서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정권이 김대중(DJ)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퇴임 후 안전’ 고려해 DJ에게 정권 넘긴 YS
 
YS 측으로서는 ‘DJ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이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는 데 더 이로울 것이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DJ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니 나를 겨누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나는 이 부분이 YS 정권의 가장 큰 실책이고 비난받아 마땅하며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YS는 나라를 부도냈기 때문이 아니라 반역 정권의 탄생에 공헌했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론에 지나치게 민감했던 문민정부
 
문민정부는 지나치게 여론에 신경을 썼다. 대통령 자신이 언론의 보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대공정책실 보좌원으로 근무하면서 정권과 정보기관‧언론 간의 관계에 대해 참 많이도 보고 들었다.
 
내가 대공정책실에 근무하던 1994년에도 이미 정권과 언론 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당시 YS 정권도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문민정부는 언론 사정이라는 칼을 만지작거리기는 했지만 실제로 직접 들이대지는 않았다. 반면에 DJ 정권은 1999‧2001년 두 차례에 걸쳐 국세청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언론을 탄압했다.
 
한번은 오 실장의 초청으로 조선일보 김철 부장이 대공정책실 직원들에게 언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강연을 했었다. 김철 부장은 “대한민국 언론은 무조건 조져야 한다. 주먹으로 대하는 게 제일이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자신이 언론인이면서 어떻게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K2 세력은 경복고 출신에 집착하다 보니 경기고 출신인 이회창 씨를 배제하고 경원시했다. 이들은 이회창 씨가 신한국당의 총재가 되고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개명 후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고 난 후에도 그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않았다. 1997년 3월13일 신한국당은 여의도 63빌딩에서 제2차 전국위원회를 열고 이홍구 대표의 후임에 이회창(오른쪽) 상임고문을 선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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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시절 막강했던 조선일보
 
문민정부 시절 내내 조선일보의 힘은 막강했다. 요즘은 보수 일간지들이 갈짓자 행보를 보여 절독 운동이 일어나는 등 그 위상이 보잘것없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찌라시 수준의 인터넷 매체들과 경쟁하게 되리라고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조선일보 사주는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렸다. 실제로 그는 그만큼 힘이 있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천칭의 한쪽에 여타 신문을 쌓아 놓고 다른 쪽에 조선일보를 얹으면 천칭이 조선일보 쪽으로 기울어지는 TV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광고 내용처럼 조선일보는 다른 모든 언론을 합친 것만큼 영향력이 있었다. “조선일보 1면 하단에 광고 내기가 골프장 부킹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하던 시절이었다.
 
‘나 홀로’ 흑자를 구가한 조선일보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대다수 신문사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세계일보‧국민일보 같은 신문들은 매년 수백억 원씩 적자를 내고 있었다. 한국일보는 부도 직전에서 간당간당했다. 경향신문의 사주였던 김승연 회장은 “한화 야구단보다 못한 놈들”이라며 신문사 관계자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한겨레도 만성 적자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절에 조선일보만은 나 홀로 엄청난 흑자를 구가했다. “언론계 전체가 내는 세금보다 조선일보 한 회사가 내는 세금이 더 많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조선일보는 회사만 잘나가는 게 아니라 소속 기자들도 잘나갔다. 그래서 다른 매체에서 취재력을 인정받으면 조선일보로 옮겨가는 게 일종의 정해진 코스처럼 여겨졌다.
 
신문기자가 잘나가던 시절
 
당시엔 신문기자들의 입김이 셌다. 신문기자들은 방송기자를 아예 기자로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신문기자들은 방송기자들을 ‘제 손으로 기사 한 줄 제대로 못 쓰는’ 실력이 형편없는 기자들로 치부했다.
 
신문기자들 중에서도 조선일보 기자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정권을 가르치려 드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조선일보 기자들 중에 소위 ‘YS 장학생’들이 있었다. 김모 기자와 이모 기자가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조선일보 고위층에서 이 장학생들에게 “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학생들은“그럴 수 없다. 차라리 사표를 쓰겠다”며 버텼다고 한다. 그러자 중앙일보가 이 기자들을 스카우트해 갔다.
 
오정소 실장… ‘촌지’로 언론사에 기름칠
 
오 실장은 각 언론사의 편집국장이나 정치부장 같은 핵심 간부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이들과는 정기적으로 자리를 만들었다. 모임에 나갈 때는 언제나 현금이 두둑이 든 가방을 가지고 나갔다. 소위 ‘촌지(寸志)’라고 하는 것이었다. 오 실장의 판공비는 대부분 기자들에게 주는 촌지로 쓰인다고 할 정도였다. “안기부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직접 헤아려 보지 않아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한 번 나갈 때마다 수천만 원은 들고 나가는 것 같았다. 한 사람에게 족히 수백만 원은 돌아가는 액수였다.
 
이러한 기름칠이 효력을 발휘한 덕분인지, 오 실장은 그 후 고비마다 언론의 도움을 받았다. DJ 정권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언론들은 축소 보도로 그를 보호해 주었다.
 
YS 정권 오정소‧DJ 정권 박지원… 언론사 길들이기
 
YS 정권에서 오 실장이 했던 역할을 DJ 정권 때는 박지원 씨가 했다. 둘 다 언론을 조지고 얼러대는 데는 프로급 실력자들이었다. 언젠가 박지원 씨를 도청한 미림팀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지금 이 시간에도 오정소 ××가 우리를 도청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사석에서의 그의 말은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노무현정부의 DJ 대북송금 특검에서 ‘오정소 차장이 박지원에게 김영완을 소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권교체 과정에서 오 차장과 박지원 간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거나 ‘욕하면서 배우고 싸우면서 닮는다’는 말은 진실인가 보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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