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내각제라 하지만 의원내각제가 정확한 표현이다. 1873년 일본에서 서유럽의 행정부를 일컫는 용어 ‘캐비닛’(cabinet)을 ‘내각’(內閣)이라고 옮긴 공식 문건이 나왔다. 이것은 고전중국어 어휘를 되살린 것으로, ‘내각’이란 황제가 자문을 구하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거대 권력·귀족화한 고급관료층 대신 황제가 직접 국정을 챙기면서 중국사에 ‘내각’이 등장한다.
14세기 말 명 태조가 8일간 평균 200여 건의 상소를 검토하며 400여 건의 국사를 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과중한 업무를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황제의 집무·생활 공간인 대전(大殿) 내에 문연각(文淵閣)을 두고 한림원 학사들을 불러모아 자문을 구했고 이게 약칭 ‘내각’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한림원은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황제의 서한이나 연회·명절 축하 시편 등을 지어 바치던 부서였으나 이곳 학사들이 황제의 측근이 되면서 차츰 권력 실세로 부상한다.
한편 16세기 중반 영어에선 서류·술 등의 보관함인 캐비닛이 점차 그런 용도의 가구 내지 작은 방의 의미로 쓰였다. 17세기 이후엔 군주의 가까운 보좌진만 드나드는 배타적 공간을 뜻하면서 거기 모인 사람들 조직을 캐비닛으로 칭하게 됐다. ‘백악관’ ‘크렘린궁’ 등이 해당 국가의 정부를 가리키는 것 같은 현상이다. 19세기 전반 앤드류 잭슨 미국 7대 대통령 때 ‘키친(kitchen) 캐비닛’이란 정치 풍자어도 생겨났다. 부엌을 드나들 만큼 허물 없는 측근들이 자문 역할을 한다 해서 ‘비선(非線)’의 동의어가 됐다.
주요 7개국(G7)이 미국 빼고 사실상 모두 의원내각제다.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 역시 대통령제 요소를 가미했을 뿐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선진국들에 자리 잡았다 해서 모범답안으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이들 대부분은 중앙집권 역사가 짧아 지역별 피라미드형 영주 권력 시스템에 친숙하며, 그것의 현대판이 의원내각제다. 일찍 부강해진 것은 식민지 덕분이지 정치체제 자체가 우월해서라고 보긴 어렵다.
또 중산층과 절대왕권의 대결 과정에서 발전한 것이 서유럽 근대정치사이다 보니 지방분권적 의원내각제가 정착하기 수월했던 것이다. 최선의 제도였다면 그 후예들이 미국을 세울 때 왜 채택하지 않았겠나. 미국에선 인류 최초의 대통령제가 실험됐고 그것을 재현한 게 대한민국이다. 삼권분립 대통령제는 지방 토호와 엘리트 연합체가 대대손손 특권을 이어 가기 쉬운 의회 우위의 제도보다 장점이 많다. 직접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해 제거하려는 시도엔 역사의 관성이 엿보인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