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이 없는 체제(공화정)’로 크게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가 있다. 1860년대 초 일본에서 구미 정치체제를 소개하던 중에 한자어 ‘대통령’(大統領)이 등장했다.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 이헌영은 그해 7월 제20대 미국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 피격 사건을 보도한 현지 신문에서 이 단어를 접하고 보고서로 작성한 기록에 대통령을 국왕으로 여겨 주석을 달았다.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 일지 쯤에 해당될 1884년 승정원일기엔 중국식 음차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 나온다. 이를 중국어로 발음하면 ‘프레지던트’(President)와 비슷하게 들린다. 1889년경부터 ‘대통령’이란 표기가 국내 보급되기 시작한다. 미국에 전권대신으로 주재하던 박정양이 돌아와 고종을 접견하면서 미국 국가원수를 그렇게 부른다고 전한 게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현대적 의미의 대통령제’는 대영제국과 싸워 독립한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다. 권력분립 사상에 기초한 세계 최초의 시스템이다. 국가수반의 직함 역시 특이하게 ‘앞자리에 앉다’는 어원 조합으로 정해진다. 즉 모임 내지 회의의 주재자를 뜻하므로 인류가 경험한 기존 최고권력자와 완전히 다른 이미지다. 훗날 대통령에 유독 많은 권력이 집중된 사례는 시대적 배경과 해당 인물의 기질·이력 등 여러 가지가 중첩된 결과일 수 있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을 함부로 써선 안 된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권신들을 압도할 지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임금이 몇 안 되는 마당에 우리나라에 한때 있었던 대통령에 대한 권력 집중 현상을 전근대적 유산으로 보기도 어렵다. ‘제왕적 대통령’은 1973년 미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책이 출간된 이후 널리 쓰이게 된 표현이다. 미국 역사가이자 민주당계 지식인 아서 슐레진저 2세의 이 책은 편견으로 가득하다. 열렬한 존 F. 케네디(1917~63) 지지자였던 그는 공화당계 대통령들을 공격할 때 이 개념을 활용했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건국이나 압축 산업화(근대화) 단계에선 권력 집중은 불가피하다. 다만 어떤 지도자·어떤 국민이냐에 따라 성과가 전혀 다르며 이는 그 나라의 역사·전통·문화과 깊이 연관돼 있다. 대통령제에선 대통령의 임기가 의회의 신임 여부와 무관하게 보장되므로 정국 안정과 정책의 장기적·계획적 추진에 유리한 게 일반적이다. 물론 거대 야당이 악의적으로 나오면 국정 운영은 불가능해진다. 또한 대통령 탄핵이 빈번한 나라에서 ‘제왕적 대통령 문제점’ 운운하며 개헌 논의가 나온다면 ‘의원내각제 세력의 음모’라는 말을 들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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