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영어 잘하는 국정원 사람들
너무 개인적인 일이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정보협력과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소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국정원에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이들이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지 좀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해외공작국 정보협력과의 신 과장은 경복고등학교‧서울대 언어학과 출신으로 영어를 특히 잘했다. 유학을 다녀오지 않고 국내에서 배운 영어를 우리끼리는 ‘된장 영어’라고 불렀다. 안기부 역사상 ‘된장 영어’로 가장 유명했던 분은 이동복 특보와 현홍주 차장이었다.
‘된장 영어’의 전설 이동복 특보‧현홍주 차장
나는 이동복 특보를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영어를 잘했는지 모르지만 들리는 말로는 외신 기자들에게 영어로 브리핑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이 특보는 특히 어려운 단어와 표현들만 골라 써서 조금 현학적으로 들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현홍주 전 주미 대사가 영어로 대담하는 것은 TV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대학 시절 AFKN을 통해 ABC 방송의 심야 대담프로인 ‘나이트 라인’을 즐겨 보았는데 한번은 전두환 정권 말년 즈음에 현 대사와 민주당의 박실 의원이 그 프로에 나와 토론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집권 여당의 상황이 국제적으로 비난의 대상이었음에도 현 대사는 유창하고 거침없는 영어로 유연하게 변명해 나갔다. 반면에 박실 의원은 훨씬 유리한 형국이었음에도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버벅거리며 공격의 포인트를 잡지 못했다. 현 대사의 완벽한 한판승이었다.
깔끔하고 품위 있는 신 과장의 영어… 겸손함 잃지 않아
신 과장의 영어 실력은 이들 전설적인 선배들에게도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영어는 쉬우면서도 깔끔하고 품위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어 실력이 “부산에서 중학교 다닐 때 배운 게 전부”라고 늘 겸손해했다. 그러면서 우리 후배들에게는 “나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는 영어뿐만 아니라 우리말 보고서도 빼어나게 잘 썼다. 우리가 올린 보고서의 초안이 그의 손을 거치기만 하면 기가 막히게 잘된 보고서로 변해서 나오곤 했다. 우리는 그를 ‘신의 손’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그가 우리들의 초안 보고서를 잘 손질해 줬다는 말이다.
실력 하나로 고속 승진한 ‘신의 손’ 신 과장
신 과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공보비서실에서 일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의 영문 자료는 모두 그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청와대에 근무할 때 안기부 간부들이 부러웠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의 5공 시절에는 안기부의 과장급 간부에게도 관용차가 지급되고 직접 청와대에 들어가 보고도 하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자원하여 안기부로 옮겨 왔다. 그는 아무런 인맥도 연고도 없었지만 실력 하나로 남들보다 빨리 승진했다.
당시 정보협력과 1계장은 내가 노벨상 공작에 관한 글에서 밝힌 박경○ 씨였다. 그는 본래 외사국 출신이었는데 어찌어찌해서 도미니카에 파견관으로 나갔다가 귀국한 후 정보협력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정보협력과 1계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부와의 정보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일이었다.
만년 계장 박경○의 과장 진급 도와준 신 과장
당시 박경○ 계장은 CIA와 모든 정보협력을 관장해야 할 직책에 앉아 있었는데, 능력이 안 되어서인지 성의가 없어서인지 아무튼 그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상관 밑에서 일하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하루 종일 영자신문의 간지를 보며 소일했다.
그래서 CIA와의 정보협력 업무는 박 계장 대신 7급 직원에 불과했던 박지○ 선배가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정영○ 국장은 박 계장이 자기의 고대 후배임에도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 데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신 과장은 그런 박 계장을 과장으로 진급시키기 위해 애를 써 주었다. 신 과장의 후원 덕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박 계장은 막차로 간신히 지원조정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이란 게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1998년에 정권이 바뀌자 모든 것이 역전되었다. 새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신 과장을 구박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내쫓듯이 그를 유엔 공사로 내보냈다.
마침 박경○ 과장도 뉴욕 참사로 발령이 났다. 직급상 엄연히 신 공사가 상관이고 박 참사는 아랫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겐 직급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직접 확인한 얘기는 아니지만 들은 바로는 박 참사는 신 공사에게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죽은 듯이 지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가 실세이니 ‘설치지 말고 알아서 처신하라’는 경고였던 셈이다. 권력의 희비가 교차하는 비정한 순간이었다.
정권 교체와 함께 바뀐 세상… 박경○의 벼락출세
그 후 박경○ 참사는 워싱턴으로 옮기더니 1999년 9월경 갑자기 단장으로 승진해 본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2001년 4월, 노벨상 공작을 성공시킨 후 국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승진은 계급 연한조차 채우지 않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박경○ 씨의 이례적인 진급은 문민정부 시절의 오정소 차장과 참여정부의 김만복 원장의 벼락출세에 비견할 만큼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 사실은 언젠가 시사저널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그 후 그는 노무현 정권 때 이스라엘 대사로 나갔다.
박경○ 계장의 후임으로 정보협력과 1계장으로 온 것은 김용○ 씨였다. 신 과장이 단장으로 진급한 후 김 계장은 후임 정보협력과장이 되었다. 이후에도 김용○ 씨는 계속 신 과장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노무현 정권 때는 신 공사에 이어 워싱턴 공사를 지냈다. 내가 이분을 언급하는 이유는 외람된 일이지만 이분의 인품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해외공작국… ‘썅캐’의 세계
흔히 해외공작국 요원들은 스스로를 비하하여 ‘썅캐’라고 불렀다. 아마도 ‘상놈의 개새끼’라는 말의 줄임말일 것이다. 평생 남의 뒤통수나 치면서 험하게 살다 보니 그런 자조적인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정보관이란 게 원래 그런 속성이 있다. 남의 잘하는 짓은 보고할 만한 게 없고, 매일 남이 잘못하는 것만 찾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해외공작국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이 어딘지 모르게 인격이 꼬이고 비틀어져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평생 남의 뒤꽁무니나 캐고 다니다 보면 그렇게 변하는가 싶었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용○ 계장은 예외적인 존재였다. 이런 험악한 여건에서도 온전한 인격을 보존한 보기 드문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정보협력과의 주요 업무… 해외 정보기관 간부들 방한 초청
해외공작국 정보협력과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국정원 간부들의 해외 출장을 준비하는 일과 외국 정보기관 간부들을 방한 초청하는 일이었다. 외국 정보기관과 정보협력 채널을 구축하거나 기존의 채널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외국 정보기관 간부를 방한 초청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초청 교섭은 해당국에 파견된 파견관들이 직접 하지만 일단 초청되어 국내에 들어오면 정보협력과에서 모든 행사를 주관했다. 보통 외국 정보기관 고위 인사들의 초청 목적은 원장‧차장과의 접견을 주선하는 것이었지만 향응과 접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정보협력과 요원들은 이들의 방한 행사를 기획하고 가이드 노릇까지 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