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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31] Refresh
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6-24 06:30:06
 
 
 
남편은 친정아버지 제사 이후로 승연 눈치를 자주 살폈다. 자진해서 하지 않았던 쓰레기 분리배출을 해 준다든가 청소기를 돌린다든가 모닝커피를 내려 준다든가. 그래 봤자 얼마 안 가겠지만. 그것보다 큰 변화가 있었다. 남편이, 종종 분위기 좋은 데 가서 밥도 먹고 쉬었다 오기도 하자는 소릴 했다. 승연은 ‘남편이 안 하던 행동하면 의심하라’는 친구들 말이 떠올랐다.
 
승연은 남편이 그럴 위인이나 될까 싶었다. 남편이 밖에서 뭘 하든 관심 없고 그저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중에 한 번 시간 내, 그럼. 근데 어디로 갈 건데? 잘 아는 데 있어? 승연이 넌지시 떠봤다. 아는 데가 있기는. 인터넷 검색해 봐야지. 아님, 그런 쪽으로 전문인 놈한테 물어보든지. 내친김에 남편은 날짜를 골랐다. 수정이 오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 너무 멀리는 가지 말자. 그래야지. 근데 당신 수정이랑 화해는 한 거야? 수정이가 예민하게 굴지 않는 거 보니 화해한 것 같기도 하고.
 
화해하고 말고가 어딨어. 승준 여편네가 괜히 수정이한테 이상한 소릴 해대서 잠깐 당황한 거지. 미친 여편네가 얼굴 다 갈아 버리면 내가 어떻게 알아봐…. 마지막 말은 낮게 중얼거렸다. 남편은 누구 추천을 받았는지 인터넷을 뒤졌는지 양평 맛집으로 정했다. 강마을다람쥐란 도토리 전문 음식점이었다. 남편과 밖에 나온 건 오랜만이었다. 시어머니 모신 후로 수정이 뒷바라지하느라 문화 생활은 언감생심이었다. 팔당대교 근처는 몰라보게 바뀌어 있었다.
 
“와, 너무 바뀌어서 생소하다. 전혀 기억이 안 나는걸.” 음식 맛은 그저 그랬다.
 
기대를 잔뜩 해서 그런지 소문만큼 감탄할 만한 맛은 아니었다. 밖에서 좋은 경치 보며 먹는 식사라서 입소문 탔나 보다 생각했다. 도토리로 만든 메밀전병은 먹을 만했고 해물파전도 재료를 아끼지 않아 시내 음식점보단 나았다. 음식점 마당에서 ‘불멍’용 장작불이 타는 것까지 보고 남편은 서둘러 이동하자고 했다. 남편이 야외로 나가자 했던 목적은 딴 데 있었다.
 
‘그래, 시간 끌 거 뭐 있나. 밀당할 사이도 아니고.’ 승연이 남편과 간 곳은 무인텔이었다. 규모가 큰 호텔급이었는데 개별 주차장에서 객실까지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객실 앞에서 모니터로 방값을 계산하면 됐다. 주차장부터 객실에 이르는 사이 외부인과 마주칠 일이 없게 설계된 게 특이했다.
 
“와, 신기하다. 이런 데가 다 있네!” 남편은 마치 놀이동산에 처음 와 본 어린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무인텔 시스템에 연신 감탄했다.
 
모르는 척 연기하는 건지 오버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호텔 내부도 깔끔하고 나무랄 데 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남편이 승연과 외국에 나갈 때 가장 신경 쓰는 곳이 호텔이었다. 승연이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이라 숙소 선정에 공을 들여야 했다. 방해받지 않은 섹스라 나쁘지 않았다. 남편은 집에서 할 때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승연이 달아오를 때까지 충분히 애무했고 승연도 남편에게 집중했다. 바스락거리는 침구의 촉감이 승연의 기분을 자극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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