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숙 선배 아버지라니?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아니고 아버지가 희숙 선배 휴대폰을 왜 받지? 혹시 그때 그일, 부재 전화 못 받은 일로 싸우고 고향에 내려간 걸까. 희숙은 목구멍에 고인 침을 삼키곤 입을 떼었다. “아, 네 저는 오승연이라고 희숙 언니 대학 후배인데요, 희숙 선배랑 통화하고 싶어서요.”
희숙 아버지는 호흡을 가다듬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수화기 저편으로 서랍 여닫는 소리,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찾는 듯하더니 수화기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오승연 씨가 맞아요? 오승연 씨가 맞다면 내가 보내 줄 게 있으니 주소 좀 불러봐요. 희숙이가 꼭 전하라 했어요.” 승연은 오싹했다. 희숙 선배가 전화를 직접 받지 않은 것과 희숙 아버지한테 부탁했다는 것이 불안하고 께름칙했다. 불안한 느낌은 그리 오래지 않아 실체를 드러냈다. 희숙 아버지는 힘겹게 입을 뗐다.
“희숙이 죽었어요. 일주일 전에. 희숙이가 오승연 씨한테 전해 달라는 게 있어서 제가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승연은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윤희숙이 죽다니. 일주일 전에 만났던 윤희숙이 그새 죽었단 말인가.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왜?
심장은 좀체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심장을 큰 바위 하나가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꿈꾸다 가위눌린 것 같이 꼼짝달싹 못 하고 숨만 겨우 내쉬는 듯한 형국이었다. 은영은 승연을 보고 영문을 몰라 손가락으로 승연 팔뚝을 쿡쿡 치며 입 모양으로 무슨 일인데? 라고 물었다. 승연이 충격받았다고 생각했는지 희숙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희숙이 하나님 곁으로 갔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지 어미 만나러 갔으니 거기서 행복할 겁니다.”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승연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를 못 느낀 건지, 하나님의 뜻으로 체념한 건지 희숙 아버지는 부연 설명하지 않은 채 승연을 위로하고 있었다. 승연은 겨우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희숙 아버지께 물었다.
“지난주에 제가 선배 만났어요. 저랑… 만났다고요. 그런데 왜, 갑자기요? 어떻게요? 사고인가요?” 승연의 감정은 충격과 분노, 알 수 없는 배신감이었다. 그저 희숙을 만났을 뿐인데 일주일 뒤에 부고 소식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승연이 희숙을 만난 게 죽음을 초래할 일이었나? 순간 불편한 자책이 밀려왔다.
“모르겠어요. 희숙이 잔뜩 선물을 사왔더라고요. 동생들 다 불러서 횟집에 가서 배불리 먹이고 다음 날은 온 집안 청소하고 지 새벽 기도 다녀와서 지 딸하고 나랑 통화하게 해 주고는 지 엄마 산소에 가서… 그 옆에….” 희숙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찾은 걸까, 엄마를 그리워했던 딸로 살고 싶었던 걸까.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