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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路 동서고금 <61> 상하이
임명신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9-16 07:59:40
상하이(上海)를 1986년 외래어 표기법 제정 이전엔 ‘상해’라고 썼다. ‘임시정부’ 앞에 쓰자면 여전히 ‘상해’ 쪽이 더 자연스럽다. 현대 중국의 표준어(만다린)는 마지막 왕조의 수도 베이징 지역 방언과 관리들 용어(官話)에 기반한 푸퉁화(普通話)인데, 이것의 병음부호 Shanghai를 영어처럼 ‘솽하이’라고 읽으면 안 된다. 중국어로 말할 때엔 혀를 말아올려 고정시킨 후 아랫입술을 좌우로 당기며 소리내야 한다. ‘샹하이’처럼 들리는 게 정확한 발음이며 상하이 본토말로는 ‘장해’에 가깝다. 
 
‘샤하이(下海)’라는 단어도 있다. 상하이·샤하이 둘 다 황푸(黃浦)강 하구에서 배 타고 바다까지 가는 것, 즉 ‘바다에 오르다·바다로 내려가다’라는 뜻으로, 결국 같은 말이었다. 다만 상하이가 지명으로 굳어진 반면샤하이엔 개혁개방 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더 큰 돈벌이에 뛰어든다’는 새 의미가 추가됐다. 샤하이의 정점이 오늘날 상하이적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기도 하다.
 
오(吳)나라 땅이었다 해서 상하이말을 오방언 내지 오어라 하는데 푸퉁화와의 거리가 서울말-제주말보다 멀다. 쑤저우·닝보·원저우 등 오어권 사람들이 상하이말을 일부 알아듣는다고 한다. 1980년대 이전엔 가정·시장·학교에서 상하이어를 많이 썼으나 공교육·방송 매체 보급으로 푸퉁화가 확산됐다. 이젠 청년 세대일수록 모어를 소극적으로만 쓰며 심지어 상하이어를 알아듣긴 해도 능숙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었다.
 
7세기 초부터 340여 년에 걸친 당나라 건국-멸망 및5개 왕조 교체 시대인 오대에만 해도 양쯔강 하구의 지류인 황푸강 주변 습지·깡촌이던 곳이 상해포(浦)로 문헌에 등장한 것은 11세기경 송나라 때 일이다. 어업과 염전업이 활성화돼 강변 마을을 넘어 항구로 발전하다가 1292년 원나라 세조 때 현(縣)이 된 상하이는 이후 목화·직물 산업과 수운업 등으로 번영한다. 14~16세기 명나라 후반, 강남의 신흥 도시 상하이는 쑤저우·항저우 등 전통 대도시에 비해 소규모였으나 17세기 이래 강남 곡창·직물 유통의 주요 항구로 자리매김하면서 인구 수십만을 거느리게 된다. 
 
상하이가 대륙 내 최첨단 대도시로 부상한 결정적 계기는 아편전쟁 패배 후 난징조약(1843년)을 통해 개항하고 서구와 일본 등 열강의 조계(租界)가 생기면서다. 20세기 들어서는 아시아 국가들 중 제일 잘나가던 일본의 도쿄조차 상하이에 비하면 ‘시골’이었다. 정치·권력의 도시 베이징에 대해 상하이는 경제·무역의 땅으로서 개성과 경쟁 의식도 키워 간다. 베이징·상하이의 한 글자씩을 딴 조어 ‘징파이(京派)’ ‘하이파이(海派)’가 유행하기도 했다. 
 
1920·30년대 상하이는 ‘동양의 파리’로 불리며 아시아 최고의 ‘모던’함을 자랑했다. ‘중국인이기 이전에 상하이 사람’ 류의 자의식이 번지기 시작한 것도 대략 이 시기다. 한편 중화민국 치외법권 지역이던 조계가 인종·국적·이념의 시장이자 각축장이었던 역사도 잊을 수 없다. 호텔 바·나이트클럽 등에 국민당·공산당원, 일본 고등경찰·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 각국 첩자들이 암중모색하며 공존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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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가 영어 동사로 정착한 사실 또한 흥미롭다. 19세기 시대상의 부산물인 영단어 shanghai는 ‘속이거나 납치해 강제로 뱃일을 시키다’는 뜻이 됐다. 태평양 무역이 활발해져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서부 항구 도시에서 인력 부족을 메우고자 술집에서 사람을 취하게 만든 뒤 배에 태워 상하이까지 실어 가는 일이 흔했던 것이다. 오늘날 영단어 shanghai엔 비유적인 ‘속여 끌어들이다, 강제로 시키다’라는 의미만 남았다. ‘원치 않는 뭔가를 억지로’ 하게 된 것을 문학적·해학적으로 표현할 때 be동사에 shanghaied(과거분사형)를 붙여 수동태로 표현한다.
 
2023년 기준 상하이 인구는 2487만4500명이며 이 중 현지 호적 소유자는 전체의 약 59.5%(1480만1700명)에 불과하다. 유동 인구가 한때 1000만480만 명이었으나 경기 침체와 함께 감소해 2024년 1000만 명 이하로 낮아졌다. 상하이의 살인적 물가 역시 유명하다. 2025년 8월 기준 1인 월 생활비(주거비 제외)가 한화 84만 원 정도로 베이징보다 비싸다. 중심가의 원룸 월세는 95만~230만 원이나 한다.
 
 
▲ 상하이(上海) 황푸(黃浦)강 연안의 번화한 모습. ‘바다로 나아가다’는 뜻으로 상하이와 샤하이(下海)가 있다. 상하이는 지명으로 굳어졌으나 샤하이엔 개혁개방 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더 큰 돈벌이에 뛰어들다’라는 새 의미가 추가됐다. 샤하이의 정점이 오늘날 대도시 상하이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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