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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 운영 현황을 공개하도록 한 ‘일·생활 균형 공시제’가 시행 첫해부터 공시 누락이 대거 발생한 것은 정책 주체와 공시 관리 주체가 분리된 행정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각각 정책과 시스템을 맡는 구조에서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워라밸 공시제는 올해 3월부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기업의 육아휴직·유연근무제 정보를 기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제도 시행 결과 코스피 상장사 848곳 중 221곳(26.0%)이 육아휴직 정보를 공시하지 않았고, 77곳(9.1%)은 관련 항목을 비워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상 기업의 약 35%가 제도를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제도 설계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다. 워라밸 공시제는 노동부가 정책을 설계하고 금감원이 보유한 시스템을 활용해 공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공시 누락에 대해 점검이나 제재 권한이 없고 금감원은 노동정책 집행 권한이 없어 사실상 감독 주체가 부재한 상태다. 이 때문에 제도 운영 과정에서 실질적인 관리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제도 설계 단계부터 이미 지적됐다. 지난해 12월 정부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에는 “행정 주체의 분리로 실효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담겨 있었다.
또한 연구용역은 별도 공시 체계 마련과 법적 근거 강화가 필요하다고 권고했으나 도입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정책과 집행이 분리된 상태에서 제도가 시행됐고, 그 결과 첫해부터 공시 누락이 방치되는 상황이 드러났다.
이와 같은 실효성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은 “법적 근거와 감독 주체가 불명확해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의원은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육아휴직 사용 현황 공시를 의무화하고 감독 체계를 명확히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특히 일본은 2023년부터 근로자 1000명 이상 기업에 육아휴직 사용률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어 제도 설계의 참고 사례로 언급됐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제도 보완 논의가 법적 강제력 부여와 행정 주체 일원화로 이동하고 있다. 왜냐하면 노동부와 금감원 간 역할이 분리된 현 체제에서는 공시 누락에 대한 실질적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 목적이었던 기업 정보 투명성과 근로자 선택권 확대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워라밸 공시제는 당초 구직자와 근로자가 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과 유연근무제 활용 현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시행 첫해부터 공시율이 65% 수준에 그치면서 제도의 실효성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됐다. 이처럼 정책 설계와 집행이 분리된 상태가 구조적 문제로 드러나면서 법제화와 행정 개편이 향후 논의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정책이 정치권 주요 의제로 부상하면서 워라밸 공시제 논의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제도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공시 의무 강화와 감독 체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 전반에서 확산하고 있다. 결국, 공시제의 향후 방향이 노동·금융 행정 체계 재정비와 맞물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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