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乙巳年) 세모에 일본의 핵무장론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발단은 총리실의 안보 담당관이 18일 기자들에게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었는데, 다카이치 총리는 국가안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 정비계획 등 안보 3문서의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핵추진잠수함의 도입 가능성을 언급하여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 새어 나오는 핵보유니 핵잠 구입이니 하는 말들이 화젯거리가 될 이유는 별로 없다. 핵 알레르기를 가진 일본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놀란 반응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얕잡아본 ‘순진함’이거나 ‘우둔함’일 가능성이 더 크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의 참상은 맨하탄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 오펜하이머 박사를 고뇌에 빠뜨렸다.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로 불리며 일약 태평양 전쟁의 승리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오펜하이머 박사는 결국 반핵주의자가 되어 트루먼 대통령의 수소탄 제조 계획에 반대하다가 공산주의 동조자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쫓겨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요절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이 ‘핵’ 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의 핵 알레르기를 가지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의 핵 알레르기나 1967년에 선포한 비핵 3원칙은 일본 전략가들의 당연한 속내를 덮어주는 보호막이었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선박용 핵 엔진을 시험 운행했으며, 1980년대에 와서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전략가였던 나카소네가 만약의 때를 대비하는 일본의 핵전략을 수립했으며, 1988년에는 미국과의 포괄적 동의(Comprehensive Consent)를 통해 농축·재처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이로써 ‘핵연료주기의 완성’과 ‘핵무기 제조를 위한 잠재력’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확보한 것이었다.
이는 나카소네라는 전략가 지도자,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하던 우주방어구상(SDI)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일본의 기술적 지렛대 그리고 국익 외교에 몸 바치는 외교관 집단이라는 삼박자의 합작품이었다. 물론 수십 년 동안 한국에는 그런 지도자도 지렛대도 없었고, 오만한 외교관들은 많았지만 ‘영혼과 심지’를 가진 외교관들은 많지 않았다. 그 결과 이재명 정부 이전까지 수십 년 동안 ‘농축·재처리’ ‘핵추진 잠수함’ 등은 금기어로 자리를 잡았었다.
지금은 70~80년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상이다. 중국은 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화 패권을 이루겠다는 야심 찬 목표 아래 양적으로는 미국을 능가하는 전투함정을 보유했고, 2035년까지 9개의 항모전단을 갖는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또한, 그때까지 미·러에 필적하는 핵 무력을 갖겠다며 핵군비통제 장치들을 외면하고 핵 증강에 매진하고 있다. 러시아도 핵무력에서만은 미국에 질 수 없다는 결의 아래 핵 무력을 고도화해 왔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도 걸핏하면 핵 사용을 위협하곤 한다.
북한은 아홉 번째의 핵보유국이 되었고, 중·러의 비호 아래 전략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며, 러시아와의 군사기술 제휴를 통해 한·일이 질적 우위를 가졌던 재래군사력의 첨단화에 여념이 없다. 그런 중에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서는 “아틀라스처럼 미국이 세계질서를 짊어지고 가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선언하면서 동맹국들에 홀로서기와 국방비 증액을 강권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서도 일본 전략가들이 “언젠가 핵이 필요할 수 있다”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으로 기대했다면, 이는 일본을 크게 잘못 보는 것이다.
이렇듯 북·중·러 북방 삼각의 군사적 압박이 가중되고 미국의 방위 공약이 흔들리는데도 일본의 전략가들이 핵 보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화젯거리일 것이며, “일본이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있다”라는 중국의 비판과 “인류에게 대재앙을 들씌우게 될 불량국가의 도발적인 망언"이라고 한 북한의 반응이 오히려 화젯거리다.
물론, 너무나 ‘지연된 기적’이지만 최근 미국이 ‘한국의 농축·재처리 지지’ 및 ‘핵잠 보유 승인’ 원칙을 밝힌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은 ‘여건 성숙 및 동맹의 동의’라는 두 조건의 충족이 확인될 때까지 핵무장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부터라도 핵연료 주기의 완성과 핵잠재력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착실히 키워나가야 하며, 북쪽으로부터의 안보위협 변화, 남북 화해 협력 시대 개막의 여부, 미국과 북방 삼각 간의 관계 등에 따라서는 한·일이 핵 문제를 놓고 지금보다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야박한 나라’로 바뀌고 있는 동맹국의 안보공약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도 계속 고심해야 할 주제다. 전략가들이라면 이런저런 가능성을 모두 심중에 담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의 핵무장론은 난데없이 등장한 화젯거리라기보다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찬찬히 곱씹어봐야 하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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