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칼럼에 이어 오사카를 거점으로 한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 두 번째 답사 이야기다. 간사이는 주요 고개를 의미하는 관(関)을 기준으로 서쪽을 의미하는 단어다.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세키가하라(関ケ原)로 불리는 후와노세키(不破関)를 기준으로 서쪽 지방인 오사카부, 교토부, 효고현, 시가현, 나라현, 와카야마현의 2부 4현을 의미한다.
일본의 행정구역은 도도부현(都道府県)이라는 47개 최상위 행정구역 체계로 나눈다. 한국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분류다. 1도(都), 1도(道), 2부(府), 43현(県)으로 1都는 도쿄도, 1道는 홋카이도, 2府는 교토부와 오사카부, 나머지는 모두 현이다. 그러니 2개의 부(府)가 있는 간사이 지역은 역사가 깊고 매우 크게 발달한 지역이다.
간사이는 긴키(近畿)라고도 한다. 우리의 경기(京畿)와 같은 수도권이란 의미다. 일본 혼슈의 중서부 지방을 이르는 역사·문화적인 명칭이다. 도쿠가와 막부 이후 일본 행정 중심이 에도로 바뀌기 전까지 교토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수도권 지역이었다. 오늘날에는 도쿄도를 중심으로 한 간4027토지역 다음으로 거대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 여러 대도시가 확장, 연결된 광역도시권) 지역으로 여전히 서일본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토와 오사카는 혼네와 다테마에 실사판
오사카에서 이틀 머문 뒤 답사팀은 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교토로 이동했다. 교토의 첫인상은 차분했고 고즈넉했다. 평일 이른 아침이란 점도 작용했지만 고대 도시 교토가 품고 있는 도시의 기품과 내공이 느껴졌다. 교토는 흔히 오사카와 많이 비교된다. 교토 사람들이 오사카 사람들을 얕보거나 깔보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일본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이는 오랜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한 자존심과 기질 차이 때문이다.
교토는 천년 수도의 자부심이 깃든 곳이다. 교토는 794년부터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69년 수도를 도쿄로 옮기기 전까지 약 1075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이에 따라 황실과 귀족 문화의 중심지였다. 전통, 예법, 격식을 매우 중시하는 자부심이 이어져 오는 곳이다. 반면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이라 불리는 상업 도시다. 교토 사람들 시각으로는 오사카 사람들이 돈만 알고 격식과 교양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은근히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둘의 차이는 화법에도 있다. 교토는 속마음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화법이 일반적이다. 반면 오사카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솔직한 성격이다. 흔히 말하는 혼네와 다테마에의 차이다. 예를 들어 층간소음에 대해 교토 사람들이 ‘피아노 소리가 밤에도 아주 멋지다’라고 표현한다면 이는 시끄럽다란 말을 에두른 것이다. 오사카 사람들은 이 경우 그냥 ‘시끄러워 죽겠다’는 직설화법을 쓴다. 이 모든 것은 천년 수도의 고상함을 중시하는 교토의 기질과 실용과 상업성을 중시하는 오사카의 차이다.
고즈넉한 기품이 있는 천년 수도 교토
첫 답사지는 야사카 신사.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인 이리지(伊利之)가 656년 사신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가 신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주로 야사카 신사의 전승 기록인 ‘유서기략’과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를 기반으로 한 후대 학자들의 연구에서 나온 만큼 한국인으로서는 흥미 있는 부분이다.
붉은색의 신사 정문인 서루문을 통해 신사로 접어들었다. 서루문은 1497년 건조돼 일본 중요문화재 건조물 제477호로 1908년 일찌감치 지정됐다. 이 밖에도 이시도리이, 본전, 말사에비스사사전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등 유서 깊은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옛 수도 정취 물씬한 골목길과 구옥들
야사카 신사에서 나오면 상점가가 시작된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일본 전통 상점가 분위기를 한껏 살린 상점들이 즐비한 니넨자카(二年坂)와 산넨자카(三年坂)가 나온다. 우리나라 인사동 같은 골목이다. 이들은 원래 니네이자카(二寧坂), 산네이자카(産寧坂)였지만 807년(다이도 2년)에 만들었다고 해서 ‘니넨자카’, ‘산넨자카’는 이듬해 만들어서 이 같은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이름 때문에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말이 생겼다. 인근 가게에서 이를 액땜하는 부적을 판다니 말의 출처가 의심(?)스럽다.
멀리 보이는 교토 명물인 일본 북법상종의 대본산 기요미즈테라(淸水寺)는 다음 기회를 도모하고 골목을 요리조리 누볐다. 예약한 식당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답사팀 일부는 가볍게 주전부리를 했고 일부는 기념품을 샀다. 굿즈 품질이 일본답게 완성도가 높았고 몸에 밴 직원들의 친절은 교토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겼다.
캐주얼 다이닝서 즐기는 각양각색 미식
교토 요리의 특징은 1000년 넘게 일왕이 거주했던 수도의 역사, 불교 사원 문화, 그리고 담백한 재료 맛을 살리는 장인 정신에 기반한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정갈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며 눈으로 즐기는 시각적 요소가 강조된다. 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오반자이나 가이세키, 쇼진료리를 접해야 하는데 일행이 많아서 포기하고 그와 가장 근접한 호텔식으로 했다.
점심 식사는 ‘교토 비스트로(Kyoto Bistro)’라고 하는 파인 다이닝 식당에서 멋진 경험을 했다. 식당은 ‘파크 하얏트 교토’의 1층에 위치한 캐주얼 다이닝.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식, 수제 슈크림, 갓 구운 커피 외에 아름다운 산책로와 니넨자카에 늘어선 가게를 바라보며 일찍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4인이 각기 다른 메뉴를 주문해 다양하게 맛보기로 하고 연어포키보울망고아보카도라임이라는 장문의 메뉴를 비롯해 비프치즈포테이토, 피자, 페토치네볼로네제 파스타 등을 시켰다. 조리실엔 가스레인지가 없고 모두 인덕션으로 요리했다.
홀 서빙을 담당하는 직원은 일행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먼저 다가왔고 그의 배려는 가식이 없고 섬세했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 편안한 좌석이 식사의 풍미를 더했다. 시원한 맥주를 곁들인 식사는 만족스럽고 식후 호텔 주변을 둘러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빠트릴 수 없는 추억이다.
아름다운 일본 정원의 미 ‘호센인’·‘산젠인’
교토 시내로 걸어 내려와 시내버스를 타고 인근 소도시인 오하라로 이동했다. 호센인(宝泉院, 일명 액자정원)과 산젠인(三千院, 일명 이끼정원)을 보기 위함이다. 버스 타는 곳이 정확히 안내되지 않아 다소 헤매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잡아타고 작은 마을 오하라에 내려 호센인을 먼저 찾았다. 호센인 입장료에는 말차와 화과자 가격이 포함돼 있다.
호센인은 기둥과 인방을 액자 프레임처럼 활용해 정원을 감상하는 ‘액자정원’으로 유명하다. 액자에 들어 있는 사진 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편안한 다다미방에 앉아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에 접하는 말차와 화과자는 온전한 휴식의 화룡점정이다. 이때 말차는 단순한 음료를 이곳의 특별한 공간이 주는 경험을 완성하는 주된 요소가 된다.
복잡한 교토 시내를 벗어나 발품을 조금만 팔면 맛볼 수 있는 오하라의 고즈넉함은 호센인에 접해있는 산젠인(三千院)에서 완성된다. 1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천태종 문적 사찰로 이끼로 덮인 몽환적인 정원, 어린이 모습을 한 귀여운 와라베지장보살, 단풍과 수국으로 유명한 명소다. 도심을 벗어난 고요함 속에서 깊은 휴식과 사색을 즐기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폐문을 앞둔 터라 서둘러 둘러보는데, 단풍이 좋을 때 꼭 다시 와서 차분하게 걸어보고 싶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오사카 마지막 밤은 일본 정통 스시
길을 되밟아 교토를 거쳐 오사카로 돌아왔다. 나카노시마 인근에 있는 호텔로 걸어가는 길에 저녁은 자유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막상 자유롭게 식당을 고르려니 정보 부족으로 인한 결정장애로 애를 먹는 중에 일본 여행을 많이 다닌 부부가 초밥을 먹자고 손을 이끌었다. 일행은 나카노시마 콘래드호텔 지하로 스몄다.
시간은 늦은지라 식당이 적당히 문을 닫았다. 다행히 찾고 있던 스시 식당이 눈에 띄었다. ‘스시 우오가시 니혼이치 나카노시마 페스티벌 플라자점’. 우오가시 니혼이치(魚がし日本一)는 스시 프랜차이즈로 도쿄(신주쿠, 시부야 등)와 오사카 등지에 위치한 인기 스탠딩 스시(서서 먹는 초밥) 체인점이다. 도요스·오타 시장에서 직접 구매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합리적인 가격에 퀄리티 높은 에도마에 스시를 제공한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서서 먹는 방식(스탠딩)으로 셰프가 즉석에서 쥔 초밥을 접시에 올려주는 전통적 방식이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저녁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던 터라 비교적 느긋하게 보리소주도 한잔 곁들여 즐겼다. 1만 엔대 가격으로 가성비 좋게 즐길 수 있다. 우리 일행은 3000엔 정도 하는 고급 니기리 세트를 주문했다.
참치류의 붉은살 생선, 흰살 생선, 등푸른 생선, 연어와 연어알, 성게알, 관자, 단새우, 장어, 계란말이 등이 골고루 한 접시에 담겼다. 세 접시를 쥐어내는 솜씨가 여간 재빠르지 않았다. 스시는 맛이 연하고 담백한 흰살 생선(광어, 도미), 붉은살 생선(참치 아카미), 등푸른 생선(고등어, 방어), 기름진 생선(연어, 참치 뱃살), 조개류, 성게알(우니), 양념한 것(장어, 붕장어), 마무리(계란, 마키) 순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시 한 접시처럼 알록달록했던 오사카와 교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고구마 소주 한잔이 하루의 피로를 녹인다. 스시집을 나서는 데 마침 인근 한식집에 있는 다른 일행과 조우해 한 잔 더 했다. 한식집 오징어볶음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맛과 성의가 없었다. 콘래드호텔 지하 한식집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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