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1990년대 겨울이면 TV 화면을 통해 반복되던 이 광고 한 편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추운 시골집에서 생활하는 노부부의 모습을 비추며 가족의 온기를 이야기했던 이 광고는 제품 홍보를 넘어 하나의 시대적 정서를 담아냈다.
당시 경동보일러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이 광고의 메시지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그 중심에 경동보일러를 글로벌 생활환경 기업으로 성장시킨 손연호 경동나비엔 대표이사 회장이 있다.
손 회장이 현재 거주하는 곳은 서울 용산구 청암동 고급 주거단지인 ‘천년명가청암자이’다. 한강과 여의도 금융지구를 조망할 수 있는 이 단지는 용산에서도 손꼽히는 한강변 주거지로 평가받는다. 손 회장은 과거 이촌동 LG한강자이에 거주하다 2011년경 이곳으로 주거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이 거주하는 주택은 전용면적 223.75㎡(약 68평) 규모의 대형 평형이다. 청암자이는 전체적으로 중대형 면적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넓은 실내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고소득 전문직과 기업인들 선호도가 높은 단지다.
손 회장은 2011년 5월30일 청암자이 전용 223.75㎡ 한 호실을 21억9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 시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대형 평형 아파트 시장이 조정을 받던 때와 맞물린다. 현재는 30억 원대 중반 시세가 형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도보로 연결되는 한강 생활권과 여의도 금융지구 조망, 쾌적한 주거환경이 높은 가치를 유지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보일러 외길서 세계 시장으로
1951년생인 손 회장은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던 중동고를 거쳐 동아대 공업경영학과를 1978년 졸업했다. 화려한 대외 활동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기간 경동그룹의 한 축을 성장시켰다.
손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경동나비엔은 보일러 제조사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생활환경 기업으로 변모했다. 대한민국 보일러 산업의 발전 과정과 경동나비엔의 성장사는 사실상 궤를 같이한다.
1978년 창업주 고(故) 손도익 명예회장이 설립한 경동기계로 출발한 회사는 1988년 아시아 최초로 콘덴싱 보일러를 개발하며 기술 혁신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부친의 뒤를 이어 바통을 넘겨받은 손 회장은 2006년 사명을 경동나비엔으로 변경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내수용 난방기기를 판매하는 제조사에 머물지 않고 에너지 효율 기술을 수출하는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그 결과 경동나비엔은 미국 탱크리스(순간식) 온수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미국 고효율 콘덴싱 탱크리스 온수기 시장점유율은 약 40~50% 수준으로 업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현지 맞춤형 기술 혁신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형 물탱크에 물을 저장해 사용하는 저탕식(Storage Tank) 온수기가 주류를 이뤘다. 경동나비엔은 물을 저장하지 않고 필요할 때 즉시 가열하는 콘덴싱 탱크리스 기술을 앞세워 시장 패러다임을 바꿨다.
특히 미국의 노후 가스관 환경에 주목했다. 일반 탱크리스 온수기는 높은 가스압이 필요하지만 경동나비엔은 낮은 가스압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제품을 개발해 설치업체와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러시아 시장에서도 성과는 이어졌다. 경동나비엔은 러시아 벽걸이형 가스보일러 시장에서 약 23%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혹독한 겨울과 불안정한 전압 환경에 대응하는 맞춤형 기술이 현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은 결과다.
이 같은 해외 성공에 힘입어 현재 경동나비엔 매출의 약 70%는 해외에서 발생한다. 그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 시장이 핵심 성장 축 역할을 하고 있다.
콘덴싱 기술이 만든 경쟁력
경동나비엔 성장의 출발점은 콘덴싱 기술이다. 일반 보일러는 물을 데운 뒤 발생하는 고온의 배기가스를 그대로 외부로 배출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에너지가 버려진다. 반면 콘덴싱 보일러는 배기가스에 남아 있는 열을 한 번 더 회수해 난방에 활용한다. 기체 상태의 수증기가 액체로 응축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잠열까지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일반 보일러의 열효율이 80%대 초중반 수준인 반면 콘덴싱 보일러는 90% 후반대에 이르는 높은 에너지 효율을 구현할 수 있다. 에너지 절감과 친환경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콘덴싱 기술은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사실상 표준 기술로 자리 잡았다. 경동나비엔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보일러 회사를 넘어
손 회장의 시선은 더 넓은 곳을 향하고 있다. 그는 경동나비엔의 미래를 ‘쾌적한 생활환경 파트너’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회사는 환기청정기와 공기질 관리 시스템, 숙면매트, 스마트홈 플랫폼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24년에는 SK매직의 가스레인지·전기레인지·전기오븐 사업을 인수해 ‘나비엔매직’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이어 스마트홈 전문기업 코맥스를 품으며 보일러와 환기, 주방, 보안 시스템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 구축에도 나섰다.
과거 난방기기 제조사였던 기업이 이제는 집 안의 온도와 공기, 물, 수면, 주방 환경 전반을 관리하는 생활환경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집이 곧 철학
손 회장이 거주하는 청암자이는 이러한 경영 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2005년 준공된 이 단지는 5개 동, 170가구 규모로 조성됐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면 일반 아파트보다 고급 빌라에 가까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강 조망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40평형대 이상의 중대형 면적이 주류를 이룬다. 넓은 공간과 낮은 밀도, 쾌적성을 중시하는 주거 철학이 반영된 단지다.
경동나비엔이 추구하는 가치 역시 결국 사람의 삶이 머무는 공간을 더욱 건강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데 있다. 집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공기와 물, 수면 환경까지 개선하는 게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다.
2025년 경동나비엔은 매출 1조5000억 원, 영업이익 1434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연구개발 투자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생활환경 기술 기업으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30여 년 전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라는 광고가 가족의 온기를 이야기했다면 오늘날 손연호 회장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그보다 훨씬 넓다. 보일러 한 대를 판매하는 내수 기업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전체를 더 건강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침없는 영토확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강과 여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청암동 자택에서 손 회장이 바라보는 미래는 보일러의 경계를 넘어 주거 공간 전체를 정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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