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돈을 빌려주고도 이자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대출’이 5대 은행에서 사상 처음 6조 원을 넘어섰다.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코로나19 당시 수준까지 올라섰다. 특히 올해 들어 늘어난 무수익여신의 약 90%가 기업대출에서 발생하면서 경기와 부동산 시장 부진이 은행 건전성 악화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올해 6월 말 무수익여신 잔액은 6조4108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5조65억 원보다 1조4043억 원, 28.0% 증가했다. 5대 은행의 무수익여신이 6조 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수익여신은 원리금 상환이 3개월 이상 밀리거나 차주의 상환능력이 크게 떨어져 은행이 정상적인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대출을 말한다. 돈을 빌려주고도 이자를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깡통대출’로도 불린다.
전체 여신에서 무수익여신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말 0.27%에서 올해 6월 말 0.34%로 0.07%p 상승했다. 코로나19 충격이 이어지던 2020년 2월 0.34%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5대 은행의 무수익여신은 2022년 말 2조7902억 원에서 2023년 말 3조5090억 원, 2024년 말 4조3736억 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말에는 5조 원을 넘어섰고 올해 6월 6조4000억원대로 뛰었다. 2022년 말과 비교하면 3년 반 만에 두 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부실 10건 중 9건 기업서 늘었다…반년 새 1.2조 ‘눈덩이’
기업대출의 부실 증가 속도는 더욱 가파르다. 기업 무수익여신은 지난해 말 3조4087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4조6498억 원으로 1조2411억 원 늘었다. 증가율은 36.4%다. 기업대출 가운데 무수익여신 비율도 0.32%에서 0.42%로 0.10%p 뛰었다.
반면 가계 무수익여신은 1조5978억 원에서 1조7610억 원으로 1632억 원, 10.2% 증가했다. 기업 무수익여신 증가율이 가계의 3배를 웃돈다.
올해 상반기 5대 은행에서 늘어난 전체 무수익여신 1조4043억 원 가운데 기업 부문 증가액이 1조2411억 원으로 약 88%를 차지했다. 최근 은행권의 부실 확대를 사실상 기업대출이 주도하고 있는 양상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무수익여신 비율은 지난해 3월 말부터 올해 6월 말까지 5분기 연속 0.09%를 유지했다. 잔액은 늘었지만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부실 비중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은행권에서는 고금리가 이어진 가운데 경기 회복 지연과 내수 부진, 부동산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서 기업의 상환 능력이 약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공실 증가와 경매시장 부진 등도 중소기업과 부동산 관련 차주의 자금 사정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본지에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회복 지연, 내수 부진, 대외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기업과 개인 차주의 상환 여력이 전반적으로 악화했다”며 “부동산 경기 둔화와 일부 취약 업종의 부진이 길어지는 만큼 부실자산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의 회생절차도 영향을 미쳤다. 거액의 대출을 받은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절차가 끝날 때까지 관련 여신이 무수익여신으로 남을 수 있어 개별 기업의 부실만으로도 은행 건전성 지표가 크게 움직일 수 있다.
문제는 경기 회복이 늦어질 경우 ‘깡통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높은 대출금리가 기업의 이자 부담을 계속 압박하는 가운데 매출과 영업이익까지 회복하지 못하면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
은행들은 부실 징후가 있는 여신을 조기에 선별하고 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차주에게 만기 연장과 채무조정, 운전자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은 상각·매각하고 예상 손실에 대비한 충당금 적립도 병행한다.
무수익여신 규모가 사상 처음 6조 원을 넘어선 데다 부실 비율도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선 만큼 기업대출을 중심으로 한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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