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복제약(제네릭) 가격 상한선을 53.55%에서 45%로 낮추는 약가 인하 정책 시행 시점을 2027년 4월로 연기했다. 국내 제네릭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약 2배 높아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으로 지목되어 왔다.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해 국민 부담을 줄이면서 제약산업을 단순 제네릭 영업 위주에서 연구개발(R&D) 중심의 혁신 제약 생태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핵심 목표다.
정부는 R&D 투자 비중이 높은 혁신형 제약기업에게 인하율 적용 시기를 늦춰주는 혜택을 준다. 자본력과 탄탄한 매출 구조를 갖춘 대형 제약사는 R&D 비중을 늘리며 대응할 수 있는 반면 자본이 부족한 중소·하위 제약사는 생존을 위협하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R&D 비중이 낮아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지정받지 못한 제약회사는 동일한 제네릭을 팔더라도 약가 인하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 극심한 영업 손실이 불가피하다.
오리지널 의약품 품목이 적고 제네릭 매출 의존도가 높은 중소 제약회사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약가 인하로 마진은 떨어지는 반면에 영업사원 임금과 복리후생비 등 고정비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 제약회사는 매출 손실을 최소화하고 고정비를 부담을 줄이 위해 자체 영업 조직을 축소하고 외부 영업대행업체(CSO)에 판매를 위탁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CSO는 제약회사로부터 제품 판매를 위탁받아 의료진의 처방을 유도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제약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월급 대신 실적에 따른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따라서 CSO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수료를 제시하는 제약회사의 품목을 우선적으로 선택해 영업하기도 한다. 중소 제약회사는 일부 제품에 대해 50%가 넘는 수수료율을 제안하면서까지 영업을 맡기고 있다. 고정비용이 발생하는 영업 인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수수료를 주는 것이 당장 유리하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R&D 투자를 유도하는 약가 인하 정책은 또 다른 악순환을 낳는다. 당장의 수익성 악화로 자체 영업력마저 포기하는 중소 제약회사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R&D 투자는 불가능한 영역에 가깝다. 제약회사에서 신약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약가 인하 정책에서 우대를 받으려면 R&D에 집중해 혁신형 기업으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하위 제약사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자본 여력이 있는 규모가 큰 회사 외 중소 제약회사는 시장에서 소외되는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셈이다.
환자의 치료비 부담을 경감하고 국내 제약산업의 신약 개발 역량을 격려하겠다는 정책 취지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뿌리가 깊고 기둥이 튼튼한 대형 제약사 외 하위 제약사가 살아남기에는 견디기 힘든 구조다. 정부는 재정 절감이라는 단편적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하위 제약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현실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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