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지만 실로 얻은 게 많은 자리였다. ‘이념·역사·문화전쟁 어떻게 이길 것인가’라는 주제로 21일 열린 스카이데일리 주최 제3회 열린포럼 말이다. 그날 ‘병든 작가 한강에 던지는 질문 셋’을 발제했던 나는 막상 함께 발제자로 나섰던 김규나 작가의 ‘기울어진 운동장 한국 문단 처방전 있나’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게 꽤 된다. 그의 위력 있는 발제문의 전문은 이튿날 신문에 보도가 됐지만, 재음미해 볼 가치가 여전하다. 놀란 건 두 가지다.
사전에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우리 둘의 시각은 너무도 닮았다. 실제로 두 발제가 상호 보완적이었다는 말을 토론회 이후 많이 들었다. 더 중요한 건 김규나 작가란 존재 자체다. 신문기자 출신인 나야 문단 관찰자의 신분이지만, 그는 어찌 됐든 문단 사람이다. 그런데도 내부고발자 역할을 거침없이 해내는 모습이 그렇게 야무져 보일 수 없다. 그래서 김규나는 우리가 얻은 전사다.
그에게 새삼 고마운 건 보증 효과 때문이다. 나야 문단 킬러로 악명 높다. 5년 전 ‘좌파 문화권력 3인방’이란 책을 펴내고 기회가 날 때마다 ‘문단의 호메이니’ 백낙청과 그 추종자들을 때리지만,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그가 보여 준다. 실제로 그날 그는 “한국 문단의 이념적 뿌리는 마르크스 공산주의에서 시작한 정치적 올바름(PC)이고, 가깝게는 반(反)대한민국·북한 추종·친북 정서다”고 선언했다.
모두가 쉬쉬해 온 진실을 눈 하나 깜짝 않고 까발린 것이다. “북한과 김일성에 호의를 갖지 않은 작가가 없고,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게 적의를 갖지 않은 작가도 본 적 없다”는 놀라운 지적도 했다. 한국 문단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건 창비의 오너 백낙청이라고 콕 찍기도 했다. 이쯤 되면 문학에 대한 여전한 환상을 가진 이들은 물을 것이다. 너무 과한 지적은 아닐까.
아니다. 그가 지적한 반대한민국·친북 정서가 직접 표출된 최악의 사건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게 2005년 7월 백두산에서 열린 남북한 작가들의 통일문학해돋이 행사였다. 5년 전 김대중‧김정일의 범죄적 정상회담을 경축하는 자리였는데, 대단했다. 그 자리에서 악명 높은 시인 김남주의 시 ‘조국은 하나다’가 좔좔 낭송되는 충격 장면이 등장했다. 그것도 빨치산의 딸로 불리는 정지아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 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거기 참석했던 백낙청‧고은 등이 모두 만세를 부를 때 등 돌린 채 터벅터벅 혼자 내려왔던 이가 소설가 홍상화다. 그는 훗날 대한민국의 몰락을 예견한 소설 ‘디스토피아’(2005년‧랜덤하우스중앙)를 펴냈다.
그 책에서 그는 말했다. “한국 문단이 사회주의 신봉자 (그룹)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내부고발을 했던 그는 물론 직후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지적 폭력과 모독”을 경험하고 문단에서 사실상 추방되다시피 했다. 어쨌거나 21일 토론회에서 김규나에게 배운 건 디테일이다. 이른바 작가입네 하는 인간들이 어떤 자리에서 무슨 헛소리를 했고, 어떻게 좌익에 봉사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일테면 1960년 문제작 ‘광장’을 발표한 최인훈이 사망 몇 해 전인 2018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재의 판결문이 “우리 현대사 최고의 명문장”이라고 떠벌인 그 대목 말이다. 천하의 최인훈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기울어진 사람인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얼마나 산업화를 악으로 규정했는지도 새삼 보여 줬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1990년대 이후 문단 상황에 대한 그의 증언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던 문단 패거리들은 그때부터 은희경·전경린·신경숙·공지영 등 여성 작가를 등장시켜 △가부장제 비판 △전통 가정 파괴 △페미니즘에 몰두한다. 2000년 이후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름으로 도덕과 윤리 그리고 보편적 가치관 등을 파괴해 갔다. 소설 문법의 해체 작업도 본격화되었다.
그 이후 서사가 있고 문법에 맞고 논리 정연한 인과를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소설은 한물간 구시대적 작법이라고 문단에서 배척되었다는 게 김규나의 지적인데, 정신이 번쩍 난다. 기억하시는가. 한강의 문장이 그토록 엉망진창이라고 나는 고발한 바 있는데, 바로 그 맥락이었다. 이제야 한강이란 괴물을 만들어 낸 괴집단 한국 문단과의 상관관계가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새삼 밝힌다. 한국 문단에 대한 지적은 괜한 억하심정 때문이 아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공연한 한강 찬양·추앙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다. 특히 문단의 문제는 문학 장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술‧영화 등 이웃의 전 장르 좌경화에 원인을 제공했고, 인문·사회과학 전체도 망가뜨렸다. 저들의 실체 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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