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주]

금수산 궁전 전체를 김일성의 무덤으로
북한의 기아 사망자 수와 관련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나는 기아로 인한 사망자 수가 걱정되어 통계 책임자에게 그 숫자를 물어본 적이 있다. 북한에서는 1995년 50만 명이 굶어 죽었는데 그중 5만 명이 당원이었으며, 1996년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1997년의 사망자 수는 2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북한 주민들의 상황에 대해 황장엽은 흥미로운 비교를 내놨다.
“크렘린궁에서 일했던 레닌의 묘지는 크렘린궁 옆 작은 건물에 있는 반면, 김일성이 일했던 주석궁은 전체가 그대로 김일성의 묘지로 바뀌었다. 궁전 전체를 묘지로 바꾸는 역사적인 사건은 김정일에 의해 수많은 주민이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상황에서 강행됐다. 기록에 따르면 내부 장식 등 엄청난 규모의 공사에 소요된 비용이 무려 8억9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독재자의 범죄행위는 지구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민 외면하고 호화 치장한 무덤
굳이 비교하자면 고대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 건설에 주민을 동원하고, 파라오의 부인들과 가족을 죽은 파라오와 함께 생매장했다는 기록에 견줄 만해 보인다. 김일성 생전에 지어져 김정일 집권 후 더욱 화려하게 치장된 금수산 기념관은 일본과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기 위해 붉은 대리석으로 호화스럽게 꾸며졌다. 식량이 없어 죽어 가는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독재자의 묘지를 만든 것이었다.
이에 대해 황장엽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일성의 묘지를 꾸미는 데 들어간 돈이면 옥수수 600만t을 살 수 있다. 당시 북한에서는 1년에 200만t의 옥수수가 부족한 실정이었으니 그 돈이면 북한 주민들의 식량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붕괴 직전의 김씨 정권 살려 준 DJ의 대북 송금
이처럼 완전히 자금이 고갈된 상태이던 북한 체제의 금고에 김대중(DJ)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 줌으로써 거의 소멸 직전이던 김씨 일가 독재의 불씨를 되살리고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회고록에 의하면 1994년 7월 이후 김정일은 오랫동안 방 안에만 틀어박혀 생활하면서 권총을 머리맡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고용희가 권총을 앞에 놓고 있는 김정일을 보고 놀라서 “당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DJ가 김정일에게 막대한 뇌물을 보내 준 것은 주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마련되던 ‘통치자금’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의 오랜 폐습이다. 그렇게 조성되는 통치자금의 규모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비정상적인 경로로 돈이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선거 기간 소모되는 비용의 규모는 적게 잡아도 이미 조 단위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역대 대통령들의 ‘통치자금’… 한국 정치의 오랜 폐습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재벌들로부터 엄청난 이득을 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이후 5‧18 광주사태 등을 거치며 집권한 전두환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1조 원 이상의 불법 자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또한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 역시 적어도 수천억 원의 부정한 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내란죄와 함께 뇌물죄 등까지 적용해 처벌을 받았다.
이들 군 출신 대통령 이후 집권한 민간인 출신의 대통령들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태우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의 당선을 위해 당시 민자당에 3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노태우의 이러한 고백에 대해 김영삼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논단 이도형 대표는 자신의 저서에서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이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얼마 후 사퇴하기까지 짧은 기간 동안 재벌들이 엄청나게 돈을 싸 들고 와서 놀랐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이도형의 ‘김대중 의혹’이라는 책은 이러한 정황을 자세하게 전해 준다. 그 책은 책 속에 ‘P’라는 이니셜로 소개된 박태준이 한국의 재벌들로부터 6700억 원을 거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박태준은 노태우로부터 대선 후보 지명을 거절당한 후 이 돈을 전부 노태우에게 돌려주었는데, 그중 2700억 원만 김영삼의 대통령 선거에 쓰이고 4000억 원은 노태우가 착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부패한 정치자금 수수엔 여야 불문 모두가 진심
부패한 정치자금은 여당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995년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기 전 DJ는 1990년 노태우로부터 약 20억 원의 돈을 받은 사실을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고백했다.
당시 이 돈을 DJ에게 전달한 노태우의 정무 보좌관 김중권은 이후 DJ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DJ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자진해서 자금 수수 사실을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계에서는DJ가 노태우로부터 실제로 받은 돈은 20억 원이 아니라 그 열 배는 넘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1000억 원을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DJ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가 1997년 대선 직전 진행되었지만 당시 대통령이던 김영삼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이를 중단시켰다.
DJ, 김정일 비위 맞추기… 현금은 물론 식량‧비료 등도 지원
DJ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일이 자신을 평양에 초대해 준 대가로 5억 달러, 또는 김기삼의 주장에 따르면 15억 달러를 지불했다. 하지만 DJ는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현금만 지원한 게 아니었다. 그는 현금 이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우선 그는 정부 차원 외에 여러 인도적 지원 및 무역 경로를 통해 해마다 수십만t의 식량과 비료를 북한 정권에 제공했다.
그런데 우리는 김대중 및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에 얼마의 자금이 전달됐는지 정확한 금액을 알지 못하고 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최경환 의원은 햇볕정책으로 총 90억 달러 상당의 현금과 물자가 북한에 제공된 것으로 추산했다. 매년 북한에 보낸 수십만t의 식량과 비료뿐 아니라 현대그룹에 의한 금강산 관광 투자‧개성공단 개설 비용 등을 모두 합하면 최종 금액은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김정일에게 생명수가 된 DJ의 대북 지원
이러한 지원으로 인해 북한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정확히 규명한 연구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당시 북한의 경제 규모를 통해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1999년 8월 한국은행은 1998년 북한의 국내총소득(GNI)을 12억6000만 달러로 평가했다. 북한엔 1990년부터 8년 동안 구소련연방 붕괴에 따른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구소련 붕괴 후 그동안 제공되던 석유와 식량 공급이 끊긴 것에 더해 계속된 홍수‧가뭄 등 자연재해는 극심한 식량난을 불러와 북한 전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경제는 연료 및 에너지 부족 비율이 15%를 넘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에서 북한으로 전달된 엄청난 현금과 물자는 구소련 체제의 붕괴로 인한 북한의 어려움을 상쇄시켜 주는 생명수와도 같은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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