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제이(以夷制夷)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 것 혹은 오랑캐의 칼로 오랑캐를 치는 것을 뜻한다. 요즘에는 재치 있게 EEJ(이이제이)라고 쓴다.
원래 이이제이는 중국 후한서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이이제이를 활용한 예는 많다. 로마는 북방의 게르만족을 상대할 때 무력으로 막기보다 부족 간의 갈등을 조장해 자국의 안보를 유지했다.
이이제이는 대국이 소국을 상대하는 방편으로 출발했지만 정보전이 중요해진 현대에 와서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할 때도 심심치 않게 써먹는다.
최근 휴전 합의를 하지 않으면 혹독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후통첩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폭격했다.
누가 봐도 확연히 전세에 밀리는 우크라이나지만 그렇다고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6월에는 기발한 작전으로 러시아 본토의 공군기지를 기습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작전은 6월1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평범한 화물트럭 5대가 출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평범한 컨테이너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천장에 납작한 공간이 있어 작은 드론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던 것. 외관으로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러시아공군기지가 가까워 오자 드디어 컨테이너 상부 뚜껑이 열리면서 공격용 드론이 일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드론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가볍게 목표물에 제 몸을 꽂았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1년 동안 이 모델 개발에 매달렸다고 한다. SBU는 Tu-95 등 전략 폭격기의 고화질 사진을 입수해 이미지를 분석한 후 인공지능 머신러닝으로 폭격기만 골라 공격하는 자폭 드론용 소프트웨어를 제작했다.
러시아 역시 드론 공격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드론의 통상 운용 거리가 20km 남짓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있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무르만스크·이바노보·라잔·이르쿠츠크·아무르의 러시아공군기지 5곳까지 컨테이너가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거미가 사방에 거미줄을 뻗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작전은 ‘스파이더 웹(Spiderweb)’으로 명명됐다.
우크라이나는 이 작전으로 Tu-160, Tu-95 등 러시아 전략폭격기 41대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총 9조7000억 원(70억 달러)의 피해를 러시아에 입힌 셈이다.
반면 공격에 쓰인 드론은 대당 270만 원(2000달러)으로 국내에서 판매되는 성능 좋은 드론과 가격 수준이 비슷하다.
우크라이나 방산업체가 생산한 이 드론의 이름은 ‘오사(말벌)’. 말벌은 작지만 사람의 생명도 빼앗을 만큼 막강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 오사는 휴대전화로 조작 가능하고 3㎏가량의 폭발물을 시속 144㎞의 속도로 나를 수 있다고 한다.
지름 50㎝ 안팎의 소형 드론이 수천억 원짜리 폭격기들을 무용지물로 만든 이 사건은 현대전에서 드론의 위력을 명확히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전쟁사에서 이이제이의 대표적인 예로 남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잘 뚫린 도로망과 탁월한 전산망을 이용해 드론을 이동시키고 운용했다. 트럭 운전사라는 러시아의 인적 자원까지 활용했으니 철저하게 오랑캐의 칼로 오랑캐를 유린한 셈이다.
이 일로 강대국들은 바짝 긴장하게 됐다. 신기술 하나면 막강한 군사력도 간단하게 무력화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국이 우크라이나식 드론 전술로 캄보디아군을 타격하기도 했다. 전쟁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강할수록 불리해지는 전쟁의 아이러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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