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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공조달 시장의 신용평가 제도가 허점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본시장법상 메이저 신용평가사와 신용정보법상 일반 평가사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인정하면서, 실제 재무상태가 부실한 기업들이 손쉽게 공공조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정일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일반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등급은 메이저 평가사보다 최대 8단계 높게 부풀려진 사례도 확인됐다.
예를 들어 한 철도차량 제작업체 A사는 매출 4조3765억 원, 영업이익 4565억 원, 부채비율 163%임에도 메이저 평가사에서는 ‘A+’ 등급을 받았지만, 일반 평가사에서는 두 단계 높은 ‘AA’를 부여받았다.
또 다른 철도차량업체 B사는 매출 5448억 원, 영업이익 315억 원, 부채비율 435%로 재무 건전성이 낮음에도 메이저 평가사에서 ‘BB’였던 등급이 일반 평가사에서는 ‘A+’로 평가돼 무려 7단계 상향됐다. 세 번째 업체 C사도 매출 3015억 원, 영업이익 76억 원, 부채비율 155% 수준임에도 ‘BB-’에서 ‘A’로 8단계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일반 평가사의 ‘등급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실제 재무 위험이 높은 기업이 우량기업으로 둔갑해 조달시장에 진입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평가 결과가 입찰 참가자격과 납품계약 체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부실 평가가 세금 낭비와 조달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평가 기준의 불균형이다. 일반 신용평가사는 법이 정한 6가지 요건 중 단 1가지만 충족해도 평가를 개시할 수 있고, 수수료를 내면 하루 만에 등급 발급이 가능하다. 반면 메이저 평가사는 7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며, 통상 평가 기간이 20일 이상 소요된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높은 등급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평가사를 찾아다니는, 이른바 ‘등급 쇼핑’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정 의원은 “일부 중소 평가사들이 ‘급행 수수료만 내면 하루 만에 A+ 발급 가능’이라는 광고를 내세우며 사실상 신용등급을 돈으로 거래하는 시장을 만들고 있다”며 “조달 신용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허술한 평가의 후폭풍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앞서 언급된 B사는 코레일 전동차 490량을 제때 납품하지 못했고, 서울교통공사 전동차 336량은 1년 넘게 미납된 상태다. 또 다른 C사는 EMU-150 전동차 474량 납품이 지연돼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으며, 선금 사용 내역이 불투명해 감사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실제 재무상태와 동떨어진 등급은 공공조달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달청은 평가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 신용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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