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14º
습도 45%
18일·19일 양일간 ‘KOREA 2025 월드 푸드 챔피언십’이 개최됐다. 학생과 일반인을 포함해 수천 명이 참가해 각종 요리를 전시하고, 코스 요리와 테이블서비스 등 다양한 부문의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대회를 주관한 한국조리기능장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행사에는 3005명이 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를 주변에 소개하면 항상 들리는 말은 ‘가서 뭐 먹을 거 있을까’다.
사실 먹을 건 거의 없다. 이벤트성으로 일부 관람객에게 학생들이 만든 음식을 제공하고, 함께 진행되는 한우요리경연대회에서는 소규모 시식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행사를 ‘음식을 제공하는 자리’로 보긴 어렵다. 관람비 5000원은 말 그대로 ‘눈으로 먹는 식사’를 위한 비용이다.
행사장에 들어서면 크기부터 눈길을 끄는 음식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웨딩 케이크’로 불리는 1m 높이의 케이크, 정과와 다식 같은 전통 잔치음식, 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요리와 디저트가 전시장 곳곳에 놓여 있다. 완벽하게 차려진 음식 앞에 서면 ‘먹어보고 싶다’는 유혹이 든다.
밥, 전, 국, 신선로와 구절판 등 각종 음식들로 이루어진 정갈한 한식밥상을 만든 학생에게 이 음식을 먹으면 무슨 맛이 날까 물었다. 구절판의 경우, 조명의 열기에 음식이 마르는 걸 막고, 음식이 빛나게 보이도록 겉이 물엿 혼합물로 코팅됐다. 구절판을 먹으려고 했다간 오이 탕후루, 표고버섯 탕후루, 달걀 탕후루, 소고기 탕후루를 먹게 될 지도 모른다.
국의 경우 모양을 내고, 위에 지단을 예쁘게 올릴 수 있도록 젤라틴을 넣어 젤리처럼 굳혀졌다. 색깔이 고운 전은 모양을 잡기 위해 순간접착제로 그릇에 고정해 두어, 젓가락으로 집어들 수 없다. 문어 숙회도 위험하다. 전시를 위해 오랜 시간 이동한 뒤 상온에 전시돼 병균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가 음식을 건드린다면, 요리는 작품을 망친 사람을 식중독으로 응징할 것이다.
아름다울수록 더 위험하다. 흔히 ‘웨딩 케이크’로 알고 있는, 설탕으로 만든 꽃이 풍성한 케이크의 경우 설탕으로 만든 꽃의 일부는 꽃잎마다 날카로운 철사가 들어 있다. 배탈보다 훨씬 더 빠르고 공격적이다. 철사를 떼어내고 억지로 꽃을 먹는다면 겉에 바른 파우더로 인해 기침이 나고, 케이크의 식용 색소로 혀가 물들어 ‘내가 이 작품을 먹었다’는 사실이 금방 들통난다. 케이크가 다잉 메시지를 남기는 셈이다. 케이크 내부는 빵 대신 스티로폼으로 채워져 몹시 퍽퍽한 맛이 난다. 기자가 먹어보아서 안다.
큼지막하게 칼집이 들어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만화에서나 볼 법한 빵들은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날아가 딱딱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쌓이고, 말라붙는다. 대부분의 음식들도 마찬가지다.
아예 먹지도 못하는 일부 음식과는 달리 앙금을 이용해 만든 앙금플라워케이크는 이론상 삼킬 순 있지만, 단점이 있다. 케이크를 유독 화려하게 꾸민 후 배송하는 데 오랜 시간이 들었기에 썩기 직전일지도 모른다.
전시장의 음식을 건드린다고 가정했을 때, 무엇보다 무서운 건 양심의 가책이다. 이 행사에 참석하는 건 대다수 학생들이다.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전국의 학생들은 사비를 털어 며칠간 열리는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행사장에 모인다. 재료를 사고, 음식 주변을 꾸밀 장식까지 사면 지갑에 남는 게 없다.
참가비를 빙자한 연회비로 10만 원을 지출한다. 학생들은 익숙하게 담요를 가져와 딱딱한 바닥에 앉는다. 아침 일찍 음식을 세팅하기 위해 밤잠 없이 일어나고, 무거운 짐을 테이블 삼아 전시 전 음식을 조립하고, 관리한다. 아름다운 음식을 완성해 전시장에 올려놓곤, 전시장 뒤편의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이들의 노고가 빛나게 허락된 건 단 하루다. 오직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예쁜 음식들이 반나절 뒤 음식물 쓰레기통에 쌓인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전시가 끝나면 학생들은 떠나고, 내년 이맘때 다시 올라와 대회를 준비한다. 사진 속 한식을 만든 학생 또한 과거 이 대회에서 전시를 마련한 선배들을 이어 이 전시에 도전했다.
이 고등학생은 도서지역인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올라왔으며, “할머니가 해 준 밥 덕분에 한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한식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단 하루를 위한 오랜 수고가 잊히지 않게 사진으로 담았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