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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를 딛고 보수 정치의 지형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의 중도·개혁 인사들이 재등장하면서, 윤석열 정권 이후 권력 구도와 ‘보수 재편’의 신호탄이 동시에 울리고 있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먼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민심 경청 로드’ 2막을 열었다. 10·15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지역이 된 경기 남부권 화성·성남·평택·군포를 중심으로 10일간 현장 순회를 시작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민심의 반응을 청취한다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수도권 표심을 직접 파악하겠다는 정치적 행보다. 신혼부부 임장 현장에 동행하고 중개업자와 면담하는 모습은 ‘생활형 정치인’ 이미지를 부각한다. 지난달 영남권에 이어 경기권으로 무대를 옮긴 것은 내년 선거에서 수도권이 승부처라는 인식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전날 오전 SBS 라디오쇼에서 “지금은 민심에 집중할 때”라며 출마설을 일축했지만, 당내에서는 “결국 나설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친한(親한동훈)계 인사들은 “국회 입성 없이는 한동훈의 정치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투어가 단순한 민생 행보를 넘어 ‘지방선거 전초전’으로 읽히는 이유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강연 정치’로 복귀를 선언했다. 다음 달 4일 경남 김해 인제대에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연다. 2022년 경기지사 경선에서 친윤계와 충돌하며 낙선한 뒤 잠행했던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보수 진영 경기지사 후보 1위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되찾았다. 특히 김동연 경기지사와의 ‘리턴 매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중도 확장성이 높은 유 전 의원의 부활에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인천일보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17~19일 무선전화 가상번호 90.8%와 유선전화 RDD 9.2%를 통한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내년 지방선거의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누가 가장 적임자인가’라는 질문에 김동연 경기지사가 17.2%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추미애 의원(12.6%), 한준호 의원(10.3%), 김병주 의원(6.7%), 이언주 의원(5.1%), 염태영 의원(1.8%), 박정 의원(1.4%)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20.9%로 1위를 차지했다. 한동훈 전 대표가 12.1%로 뒤를 이었고, 원유철 전 의원(3.9%), 김선교 의원(2.8%), 송석준 의원(2.6%), 김성원 의원(2.5%) 순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유 전 의원의 행보는 상징적이다. 연평해전·천안함·연평도 포격전 등 보훈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며 보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정치의 윤리성’과 ‘합리적 중도’는 극단적 진영정치로 피로감이 쌓인 유권자층에 호소력을 갖는다.
보수의 또 다른 축인 오세훈 서울시장도 최근 10·15 부동산 대책을 향해 “과도한 규제”라고 직격했다. 현직 시장이 공개적으로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오 시장의 행보는 단순한 정책 견해를 넘어, 향후 권력 구도에서 윤석열계와의 미묘한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안철수 의원 역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입지를 조정 중이다. 천하람 원내대표가 언급한 ‘오철석(오세훈·안철수·이준석)’ 연대론은 공식적으로 부인됐지만, 수도권 중심의 ‘비윤 블록’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다만 안 의원은 최근 팬미팅 자리에서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출마 불출마를 명확히 하면서도 ‘정치적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어, 선거판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을 떠나 개혁신당을 이끌면서 “기존 보수 진영과의 결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한 것에 대해 “심각한 오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런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 체제는 ‘당성(黨性)’을 공천의 핵심 기준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자유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곧 ‘당에 비판적이었던 이들’인 유승민·한동훈·이준석을 견제하려는 장치로 해석된다.
반면 보수 고문단은 정반대의 메시지를 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보수는 분열을 멈추고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며 “유승민·한동훈·이준석과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결국 내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역 권력 교체전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말기 국정 기조에 대한 평가전이자, 이후 보수 권력의 향배를 가르는 경선장이 될 공산이 크다.
한 전 대표는 ‘젊은 보수의 실용’, 유 전 의원은 ‘합리적 보수의 복원’, 오 시장은 ‘행정형 리더십’을 내세운다. 여기에 안철수 의원의 중도개혁 노선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세대혁신이 가세하면, 보수의 내적 경쟁은 한층 복잡한 입체 구도를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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