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몬·위메프의 몰락을 시작으로 발란·홈플러스·브랜디(뉴넥스)·정육각 등 유통 전반에서 법정관리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단순히 한두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한국 유통 생태계 전반의 체력 저하와 구조적 위기를 보여주는 신호다.
한때 ‘패션 커머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뉴넥스는 결국 기업회생 절차를 밟았다. 2022년 1191억 원이던 매출은 불과 2년 만에 196억 원으로 6분의 1로 줄었다. 4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인수한 ‘서울스토어’ 실패로 부채가 급증했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명품 플랫폼 발란 역시 매출 반토막과 자본잠식을 견디지 못해 법원에 회생을 신청했다.
홈플러스의 상황은 더 상징적이다. 부채비율이 1400%를 넘어섰고,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연말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 오프라인 유통의 상징이던 대형마트가 ‘법정관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현실은 내수 기반이 얼마나 약화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유통기업들은 외부 투자로 점유율 확대에 집중했지만, 2021년 이후 금리가 인상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버티지 못했다. 내수 침체로 판매가 줄고 현금흐름이 막히자 연쇄 부도가 이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소매시장 성장률은 0.03%로 사실상 ‘제로 성장’이다. 10년 넘게 3%대 안정적 성장을 이어온 유통산업이 멈춰 섰다. 성장 둔화가 지속되자 기업들은 ‘할인 경쟁’과 ‘쿠폰 마케팅’으로 버텼지만,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고, 부채 부담이 다시 경영을 압박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오프라인 유통이 주춤하자 기업들은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커머스도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대부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쿠팡이 독주 체제를 굳힌 반면, G마켓·SSG닷컴·11번가 등은 수백억 원대 영업손실을 냈다. 신세계는 결국 알리바바그룹과 손잡으며 외국 자본 의존에 나섰고, 11번가를 운영하던 SK스퀘어는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국내 유통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
편의점 업계도 마찬가지다. 점포 수는 포화 상태인데 내수는 위축됐다. CU·GS25의 영업이익이 나란히 줄었고, 세븐일레븐은 2년 연속 적자에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통업 위기가 단순한 경기 불황이 아니라 구조적 저성장의 신호라고 진단한다. 고금리·고비용·저소비의 삼중고 속에서 정부 정책은 여전히 규제 중심에 머물러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민생소비쿠폰은 링거에 불과하다”며 “경제 체력이 약한 상태에서는 링거를 맞아도 회복이 어렵다. 거시적 관점의 경기 부양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버틸 체력’의 부재다. 내수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유통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마케팅이 아닌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유통망의 디지털 전환, 비용 효율화, 글로벌 시장 진출 등 새로운 성장 동력 없이는 지금의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 고금리·고비용 구조에서 기업이 스스로 버틸 수 있는 체력을 회복하려면 정상적인 투자 선순환이 작동할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완화하고, R&D 세제 지원과 유통 혁신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단기 부양책이 아닌 장기적 산업 회복 전략을 통해 내수를 살리고, 기업이 재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